남에 대한 관심, 문화에 따른 예의
따듯한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검단산을 오르기로 했다. 커다란 배낭에 완벽한 등산 장비를 갖춘 이들 사이로 우리의 형색은 가관도 아니었다. 물병도 안 가지고 온 놈, 등산화가 아니라 청바지에 테니스화를 신고 온 놈 까지. 검단산은 하남에서 자란 우리들에게 뒷산이었지 날 잡고 오르는 등산코스로 보이지 않았던 게다.
혹시 최근에 산을 오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즘 눈이 많이 와서 산 중턱부터는 여간 미끄러운 게 아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했던 등산은 아이젠은커녕 등산화도 없이 온 우리에게 녹녹할 리가 없었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눈이 녹아 갈만 했지만 정상에 가까워서는 10분에 한 번씩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거북이 모양으로 기어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가겠다 싶어서 하산을 결정했다.
그러고 보니 미끄러운 산 길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곱절은 더 힘들더라. 처음에는 넘어지는 친구들을 보고 깔깔거리면서 내려가던 우리도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무를 부여잡고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가는 우리를 보고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말씀 저 말씀을 하시던지. 처음에는 멋젓게 웃으면서 넘겼으나 오르던 길을 멈춰가면서까지 혀끝을 차는 분들을 여럿 만나니 나는 조금씩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아니 자기 걱정이나 하지 남이사.."
특히 요즘 한국에 와서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 외국에 산지 10년이 넘다 보니 한국분들의 남에 대한 관심이 약간 부담스럽다. 왜 한국 사람들은 남의 일에 이리 관심이 많을까?
미국에서는 백화점이든 지하철역이든 문을 지날 때 뒷사람이 있으면 꼭 문을 잡아준다. 작은 친절이지만 이런 것에 익숙해지면 한국에서 문 한번 안 잡아주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진다. 비행기나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다음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준다.
또 남과 살짝이라도 부딪치면 꼭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든 길거리에서든 밀치고 부딪치는 일이 흔하고 사람들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나뿐 아니라 외국에서 좀 생활을 해 보신 분들이나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이런 작은 것에 불평을 많이 한다. 물론 문화에 익숙해지면 별 다른 생각을 안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공간을 존중해주지 않는 우리의 문화가 약간은 부담스럽고 어쩔 때는 기분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외국에 오면, 특히 영어권 국가에서는 첫눈에는 모두가 친절해 보인다. 길을 가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와 함께 가볍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 다른 점은 여기서는 내가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나의 불편함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특히 미국에서는 개인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남들의 일에는 신경을 안 쓴다. 그게 예의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처럼 보여도 어지간하면 신경 쓰지 않는다. '다들 잘 알아서 하겠지' 또는 '내일이 아니니까 상관말자' 주의가 여기서는 대세다. 다른 사람들에 관심이 별로 없고 남의 일의 참견은 실례라 장애인이나 옷이나 모습이 좀 다르거나 거슬리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는 일도 드물다.
나도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라 누가 좀 다르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보면 입이 근질근질하다. 그래도 꾹 참는다. 여기서는 입 다물고 있는 게 예의라 그렇다.
내가 처음 외국에서 생활을 할 때 누가 "How are you?"라고 물으면 정말 나의 기분을 묻는 줄 알고 주절주절 내 고민이나 힘든 일을 늘어놓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딱 하나 다. "I'm fine. You?"
"How are you? 는 그냥 "Good morning"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여기서는 남들의 기분이나 상태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하는 말이다.
또 미국에서 특이한 것이 있다면 작별인사다. "나중에 점심이나 한번 하자." 또는 "다음에 전화해." 또는 "꼭 다시 한번 보자" 이런 말 들. 이것도 역시 그냥 하는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말 다시 만날 의도보다는 그냥 다음을 기약하면서 하는 게 여기 작별 인사의 관례다.
한국에서 걱정의 눈을 하고 건네는 과다한 조언들이나 삼키기 어려운 타인의 쓴 충고는 여기에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타인을 웃으며 대해도 관심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여기 사람들이 다 차가운 것만은 아니다. 친해지면 진심 어린 조언들도 많이 하고 과다할 정도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때문에 깜짝 놀랄 때도 있다.
Unsolicited advice.
즉, 원치 않는 조언을 안 하는 것뿐
우리나라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공짜로 들을 수 있는 조언이나 충고들이 여기서는 능동적으로 요청해야지만 들을 수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이런 두 가지 문화의 차이점을 두고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어쩔 땐 '아니 말을 좀 해주지.'하고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니면 '한국 같으면 사람들이 말렸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때도 있다.
문화에 따라 남들에 대한 관심이나 친절도 다르다.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 동생이랑 오랜만에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양수리 물이 보이는 카페에 갔다. 분명히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강을 보러 내려가는데 계단이 꽤나 있어서 휠체어가 가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동생과 발길을 돌리려고 하자 어디에선가 건장한 분들 두 분이 번쩍 휠체어를 들어서 엄마를 강가까지 모셔다 주셨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한 번은 또 병원에서였다. 엄마가 MRI를 찍어야 하는데 파킨슨 때문에 너무 다리를 흔들어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분이 한참을 도와주시다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너무 죄송하다며 '어머니 사진은 오늘 못 찍어도 꼭 건강하세요.'라고 몇 번을 말씀해 주시는데 그 친절에 울컥 눈물이 쏟아져서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다. 이런 일은 미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나도 원치 않는 조언은 듣고 싶지 않다. 그래도 가끔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보여주는 과분한 친절에 몸 둘 바를 모를 때도 많다.
세상엔 친절한 사람들이 참 많다.
대문사진은 검단산 정상입니다. 제가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