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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지 May 17. 2020

광고기획자는 어디에?

광고기획자의 회의감 : ① 근본

치열하고 비열한 광고대행사에서 광고기획자로 살아간다. 위기설은 매년 있었지만 우린 늘 현명하게 대처해왔다. 갈등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우리에게 사고력을 빼면 시체니까. 회의감은 피하기보다 맞서서 해결책을 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며 성장했다.


야, 얘네 좀 이상해!

비전문적이면서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직업.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 답이 없는데 팔기 위해서 답을 만들어야 하는 직업. 성공을 향하기보다 광고주를 향해야 하는 직업. 그들의 수발이 되어야 하는 직업. 에휴, 다 됐고! 상대적으로 돈도 많이 못 버는데 성취감으로 버티는 변태 같은 직업이 바로 광고기획자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광고기획자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다른 기획자도 많은데 왜? 굳이?'라고 물어보면 한 명도 빠짐없이 나오는 공통적 답변이 '여러 브랜드를 할 수 있어서'라고 한다. 그 안에는 좀 더 미친 변태 성향이 있는데, 다른 회사에 내가 무언가를 제안하는 것이 재밌단다. 그것이 팔렸을 때 성취감이 좋단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빗물 가득한 진흙탕에 '헤헤 피부에 좋은 머드팩이다~'하고 쳐 바르는 꼴. 한국 평균 근로시간이 높은 것은 아마 광고기획자들의 공이 클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대행사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들을 한다. 단돈 천만 원으로 최대 효율을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엄청난 노력으로 수주한 수십억 광고를 마치 허공에 돈을 뿌리듯 플랙스 하기도 한다.


이상한 놈들이 정상인이 되는 순간

사고, 문장, 소통, 창의, 프레젠테이션, 의사결정 등 비전문적인 분야에 있어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업이기에 광고기획자는 쓰임에 따라 무궁무진한 잠재능력을 지닌다. RPG 게임이라고 치면, 1차 직업이 광고기획자랄까? 전직을 할 때 성향과 배운 것에 따라 브랜딩 전문, 퍼포먼스 전문, 카피라이터, 기획 또는 제작 CD가 될 수도 있으며, 회사를 대표하는 프리젠테이너, 심지어 영업 담당자로 변모할 수도 있다.


광고기획자는 항해를 하는 데 있어 키를 잡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다를 항해하게 둬야 하는데... 석촌호수에 배를 띄우니 참...


1. 광고기획자를 낮추는 타이틀

타이틀 곧 자신이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 개발자는 개발자!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대외적으로 그놈의 전.문.성 타령하며 팀명을 소셜운영팀이라고 한다던지, 퍼포먼스팀이라고 한다던지 하나에 국한되게 정해 놓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명함에 광고기획자 또는 A.E라고 안 적혀 있고 매니저라 적혀있다던지, 그냥 직급만 적혀 있는 경우도 많다. 왜 그럴 거면 디자이너도 '안녕하세요. 배너 제작 전문 팀에서 배리에이션을 맡고 있습니다.'라고 하지? 훨씬 전문성 있게 보이잖아? 광고기획자가 광고기획자 그 자체일 때 광고기획자이지, 이상한 프레임을 씌어 놓으면 '아 얘네는 소셜만 하나 보네? 다른 일은 못주겠다.' 오히려 더 비전문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2. 하나만 요구하는 내부 조직 운영

회사에 캐시카우 광고주를 맡고 있는 동갑내기자 대리님이 계셨다. 해외로 워크숍을 갔을 때 단둘이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했었다.


- "과장님은 좋으시겠어요."

"뭐가요?"

- "진짜 광고기획자의 일을 하고 있잖아요. 제안도 많이 하시고요."

"뭔 소리야... 안일하게 판단해서 오랫동안 했던 광고주를 잃었는데! 대리님은 일을 하고 계시지만 이제 저는 그냥 월급루팡입니다."

- "일은 하고 있지만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광고기획자로 큰 포부를 지녔는데 퍼포먼스만 하고 있다니 참... 매체가 하는 거지 저는 그냥 시다바리란 생각밖엔 안 듭니다."

"다음 제안 때 TFT로 같이 해요. 저는 다 참여할 거니까, 재밌게 해 보죠."

- "저도 여러 번 제안 들어가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팀장님은 관심 없으시고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으시네요. 그리고 대표님은 됐고 지금 광고주에 집중하랍니다."

"... 술이나 드세요."


광고기획자는 미친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상인들처럼 '아, 퇴근시간 언제 오지?', '아, 맨날 똑같은 일 지겹네?', '점심은 뭐 먹지?', '그냥 귀찮으니까 회사가 하라는 대로 하지 뭐', '제안은 무슨, 광고주가 시키는 것만 하지 뭐~'라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순간 광고기획자는 회의감과 동시에 자신이 지닌 책임과 성취감을 놓는다. 회사를 떠날 채비를 준비 중. 아니, 광고기획자를 그만 둘 준비 중. 그래서 중간층을 찾기가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다.


피부로 와 닿는 나의 회의감

회사의 운영방침과 조직 내 위치와 역할에 대해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해관계를 해석하며 현실적인 해법을 찾는 시야가 생겼고, 기다림 미학과 배고픔의 갈증도 더 높게 도약하기 위한 무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듯이 'Remember your place'.


요즘 광고기획자로서 나의 회의감은 밖으로부터 오는 위협이다. 광고기획자, 나아가 광고대행사는 모든 걸 제로에서 시작하여 하나하나 직접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이 아니다. 광고주가 원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조력자 역할이며, 광고주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커뮤니케이션' 하는 의미가 크다. 무언가를 대신한다는 건 그것의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광고대행사는 내부에서 직접 해낼 수 있는 결과물의 범위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들이 아웃소싱이다. 광고 매체 운영은 랩사의 도움을 받으며, 촬영은 프로덕션과 부띠끄의 도움을 받으며, 개발은 개발사의 도움을 받으며, BTL은 행사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고, 제휴는 제휴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고, 인플루언서 섭외 및 콘텐츠 제작은 MCN의 도움을 받는다. 결국 수수료로 먹고 산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광고라는 범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운영과 제작을 동반해야 하기에 광고대행사를 여전히 활용하지만, 광고 레퍼런스 사이트 'TVCF'에서 만든이 항목만 보더라도 대행사 항목에 광고대행사가 아니라 프로덕션, MCN, 심지어 인하우스 광고주 이름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랩사는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폭넓은 매체와 협업을 무기로 기획 파트를 강화하고 있고, 단순 매체 운영을 넘어 전략적인 퍼포먼스 마케터들을 양성하며 강화하고 있다. 광고대행사는 이들과 비교해 각 분야에서 상대적 전문성이 떨어지기에 커머스 사업을 한다던지 다른 방향으로 먹을거리들을 찾고 있는 게 현실이다. 


썩은 가지는 자르고 뿌리에 영양분을

광고대행사의 위협은 곧 중심에 서 있는 광고기획자의 위협이다. 더 이상 광고대행사에 광고기획자가 광고기획자라는 타이틀 지녀야 하는 명분이 사라지고 있다. 그냥 대신 커뮤니케이션만 하는 존재. 리포트나 쓰며 콘텐츠 라이브 시키는 존재로 명예와 명분이 실추되고 있으며, 존재의 이유와 근본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무기는 0과 1의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포르노에 그것과 같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것이다. 차를 더 멋지게 보이도록 만드는 옵션 중 하나지, 자동차의 존재 이유와 근본인 이동수단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진정한 무기는 브랜드를 바라보는 말도 안 되는 비전문적이면서 전문적인 사고력과 통찰력. 그것을 풀어나가는 낭만적이거나 현실적인 판단이다. '어, 이거 매체 수수료 20%.' 생각할 시간에 진정 그 매체를 활용해야 맞는 건지 사고하고 제시하는 능력에 영양분을 줘야 한다. 당장의 돈에 환호할 것이 아니라 광고기획자와 광고주 간의 신뢰를 쌓아 올리면 회사 또는 어쩌면 나에게 더 큰 가치로 돌아온다.


광고기획자에게 일은 스토리지 데이터가 아니다. 미친놈을 자처하는 광고기획자 탄생의 순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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