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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지 May 24. 2020

논쟁은 어디에?

광고기획자의 회의감 : ② 대화

"왜 그만두세요?"라고 물어보면 힘들어서 혹은 지쳐서라고 말한다. "왜 지쳤어요?"라고 다시 물어보면 온전히 일에 대한 압박과 무게보다는, 그 과정 속에 있던 사람 간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갈등 때문이라고 한다. 그 갈등은 왜 해결되지 않고 퇴사라는 결과를 만들었을까? 근본적 원인은 바로 대화의 단절이다. "말해 뭐해...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하지 말자."


사적 대화 중 회의감

나는 말이 많다. 대화야 말로 흙탕물 가득한 직장이란 웅덩이에서 먹을 수 있는 맑은 물로 정제해주는 장치라고 믿는다. 그것이 단지 스트레스 해소이든 일과 관련된 해결의 실마리든 말이다.


때문에 사적인 대화도 서슴없이 꺼내던 나였다. 친구처럼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며, 직장에서 사적인 대화란 내게 있어 뉘앙스가 조금 다른데, 직장 동료인 점을 전제로 두고 일과 관련된 하소연 또는 그러한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의 아픈 손가락을 드러내는 것은 상대에게 총을 주는 것과 같았고, 어느 순간 그것은 악의 가득한 비수가 되어 내 심장에 치명상을 입혔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좀 더 철두철미하고 사족 없이 오롯이 일적인 대화만을 추구한다. 일로써 충분하게 친분이 쌓인 동료만이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존중 하에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며 사적 대화가 가능하고 믿는다.


공적 대화 중 회의감

항상 사고해야 하며 그것을 구체화해야 하는 광고기획자에게 대화는 중요하다.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절대 혼자서 일을 할 수 없는 광고기획자이기에 더욱 심장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화는 다른 측면에서 어찌 보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 때가 있다. 모두의 열정은 같은 선상에 있지 않기에. 모두의 생각은 현실적으로 다 받아들일 수 없기에. 대화에서 존중이란 귀찮고 신경 쓰이는 것이기에. '왜?'를 던지는 순간 대화는 단절된다.


[광고주]

광고주에게 더 나은 제안을 하는 것은 광고기획자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본분이다. 안 할 거 알고 있지만 역할과 책임이기 때문에 제안은 한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답은 기존 포맷 유지. 뭐, 이해는 한다. 그들도 상부의 지시 이전에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제안을 요청한 것이겠지. 항상 똑같은 요청, 똑같은 대답... 그들도 답답할 거야. 에휴.


[디자이너 & 개발자]

이들은 내 손과 발이다. 난 이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때문에 이들이 창의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지치지 않게 하는 것이 스스로 다짐한 맹약이다. 그래서 광고주에겐 더 좋은 결과물이란 핑계를 대고 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려고 한다. 또한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잘 모를 수 있는 광고주와 협의한 내용을 공유할 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히스토리를 충분히 그들의 언어로써 대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종종 기획 파트를 무시하고 크리에이티브만 따진다거나, 되는 거 아는데 "기획자는 잘 모르니까, 이건 안돼.라고 말해야지~"가 깔려 있는 개발자의 나태함이 아군인지 내부의 적인지 싶을 때가 있다. 이런 답변 들으려고 내가 먼저 기어 들어간 게 아니잖아.


[광고기획자]

시작부터 끝까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최측근들. 우리에게 사고와 입이라는 기관을 빌려 오고 가는 대화는 상호존중 하에 해결과 의사결정이란 골문을 향한다. 그러나 주적은 내부에 있다고 했나? 그 어떤 관계보다 상호존중 하에 대화가 단절되어 있으며 온갖 핑계와 현실이란 방어막 그리고 시기와 질투가 판을 친다. 아무래도 같은 부서 혹은 팀이다 보니까 가까울수록 더욱 날 것의 감정 섞인 대화가 쉽게 나오겠지. 생산적인 대화를 할수록 멀어지는 느낌이다.


답이 없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 같은 포지션이기에 "나는 알지만 너는 모르잖아" 통하는 관계이며, 끌어주고 따라가기보다 자신이 더 빛나야 하고, 대화로 풀기보다는 차단하고 그로 인해 사고력을 죽이며, 광고주의 수발이 되어 선임의 지시와 후임의 조달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광고기획자들끼리는 말이 별로 없다. 분명 11명으로 팀을 이뤄 축구를 하고 있음에도 공만 주면 드리블하기 바쁜 공격수만 있는 것 같다.


듣고 말하기부터 다시 배워야 하나?

누구는 성격이 좋아서 말이 많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공동의 일에 있어 의견을 공유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이지 않는가? 누군 안 귀찮고 안 힘든가? 마냥 성격 좋고 해맑아서 어차피 돌아오지도 않는 메아리에 힘 빠지는 대화를 왜 걸겠는가? 점심시간이나 술자리에서는 그렇게 농담들과 사적인 대화가 오고 가면서 근무시간에 일적인 대화는 회피의 대상이고 말하는 사람만 점점 총대 메는 것의 일환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여기는 회사다. "밥 먹어 아들~" "아 싫어! 귀찮아!"는 집에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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