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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지 Apr 07. 2022

절대 나이를 말하지 마

일을 너무 일찍 시작했어 1장, 나이

하필 또 빠른 년생이라 친구사이 등 사적인 관계에서까지 잡음이 많았던 나로서는 나이는 항상 걸림돌이다. 나이는 관계에서 위치와 서열을 나누는데 가장 쉽고 기본적이며 객관적인 구분점이다. 나이를 밝히는 순간 서로 예의를 차리고 팽팽하던 관계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에선 일 외적인 잡음이 섞여 애매한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다.


한 때는 일은 일이지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 일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하는 것. 그때 당한 가스라이팅 이후로 내겐 나이가 가장 치명적인 단점임을 깨달았다.


불호령

2016년 당시 나이 26살. 5~6년차에 접어들어 한창 자리를 잡던 시기 그 누구보다 합이 잘 맞았던 국장님이 계셨다. 띠동갑은 훨씬 넘었던 그분은 큰 나이 차이에도 오피셜하게 나를 대했다. 일복이 터지면서 광고주나 외부 사람을 대할 자리가 많아질 즈음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한 적 없는 그분 입에서 단호한 지시가 내려왔다.


"외부사람한테 절대 나이를 말하지 마."


의아했다. 특히나 외부사람은 일 외적인 관계 형성이랄 게 딱히 없기에 나이를 물어보는 경우가 드물다. 어쩌다 한 번씩 나이를 물어봤을 때 대답을 하면 겉치레라도 좋은 말을 해주면서 관계가 더 좋아진 경우가 많았다. 나이가 일에 관여된 적은 없었다.


무엇이 걱정되셨던 걸까. 왜 그러냐고 물음표를 달았다. 이유는 직급과 연차에 관계없이 나이만으로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하셨다. 어쩔 수 없다면 나이를 속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당시에는 그랬다. 이 말이 내 인생에서 나이가 단점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시발점인 것도 모르고.


사실 확인

이 시기에 대략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던 광고주와 일로써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미팅이 끝나고 함께 담배를 태우는 광고주의 모습이 다소 머뭇거려 보였다. 하실 말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니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다. 순간 국장님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올 것이 왔구나'


하지만 나이를 밝히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고 무시할 분도 아니라 생각하여 사실대로 말했다. 반응을 지켜봤지만 다행히도 더 좋아했고 이후로도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모멘텀이 되었다.


나이는 절대 단점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뭔지 모를 쓸쓸함이 나를 감쌌다.


등잔 밑이 어둡다

나이로 무시하는 외부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 국장님은 나에게 왜 그러셨던 걸까.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리고 유심히 국장님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전에 있었던 일도 다시 한번 곱씹어 봤다. 그러니 당시 개의치 않기에 넘어갔던 부분들이 밟히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말은 정중하게 들으면서 내가 하는 말은 어린아이의 푸념처럼 듣는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 그러면서 '형'이라 운을 띄우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회피하는 처세술. 많이 배울 때라며 나의 성향을 이용해 일을 몰아주고 본인은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신뢰란 가면 뒤에 끝없는 방관을 한다. 그리고 의도한 대로 하지 않으면 나에게는 유독 쉽게 화를 낸다. 이것은 온전히 나이 어린 나라는 사람을 대할 때 달라지는 태도였다.


그렇구나. 나이로 무시받는다는 건 정말 대놓고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주 교묘하게 의식적으로 달라지는 태도임을 깨달았다. 그러니 당연히 외부사람들은 내부에 비해서 직접적인 관계성이 약하기 때문에 나이는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정작 나이로 인해 사람을 기만하는 행동과 태도는 내부에 있었다.


나이 어린 상급자에게 하극상을 하고, 나이로 인해 철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나이로 인해 질투의 대상이 되고, 나이로 인해 가스라이팅에 대상이 되는 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주적이 있음을 알게 된 계기.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소름 끼치게 깨닫게 된 계기.


그래. 당신의 말은 분명 맞는 말이긴 했습니다.

"나이가 어리면 무시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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