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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지 Mar 17. 2023

안면마비

인고의 시간

축복받은 삶이다. 10,000명 중 1~4명 꼴로 걸린다는 구안와사, 벨마비 안면마비에 당첨됐다.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축복을 수개월간 받아야 하기에 행복한 하루하루를 지낼 생각에 감개무량하다.


예견된 일이었던 것 같다. 좋지 못한 습관과 스트레스까지 그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머리의 두통과 함께 목 뒤가 강하게 당기는 전조증상이 왔어도 단순히 잠을 잘못 잔 걸로 오해했을 정도로 좋지 못한 잔병들을 달고 살았기에 있는 힘껏 둔해졌던 내 탓이다.


이미 좋지 않은 몸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반쪽만 굳은 얼굴을 처음 마주쳤을 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까지 몸을 함부로 쓰고 있던 나 자신이 어이없을 뿐이었다.


대화와 대면이 주된 일인 나에게 안면마비는 시련이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게 하려는 몸의 큰 그림인 것 같다. 다시 원래의 표정을 찾고 싶다는 조급함은 어쩔 수 없지만 과거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이너피스의 시간을 갖고 있다.


세상 저마다 가지각색으로 치열하게 살아간다만 더 이상 그 중심에 남이라는 대상을 두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그것이 내게 스트레스로 돌아오는 나날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 한 나의 미련함과 착오였다. 더 이상 이타적임도 세심함도 희생도 없으리라. 오직 그 중심에 나를 두고 철저하게 나부터 지키며 살아보려 한다.


안면마비라는 인고의 시간을 통해서 내면의 성장을 이뤄보려 한다. 규칙적인 습관을 만들어 보려 한다. 건강한 정신을 가져보려 한다. 인고의 시간이 끝나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래서 어쩌면 정말 축복일 수도 있겠다.


빽도 없고 돈도 없으면 몸이라도 지켜야 하는데 빽 있고 돈 있는 놈 되려고 몸을 혹사시킨 지난날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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