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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지 Mar 26. 2023

대화에서 섬세함은 독이다.

박찬호 급은 아니지만 나의 대화법 대개는 TMI다. TMI도 여러 부류가 있겠지만 공통적 특징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한 어필일 것이다. 나 또한 어필하는 것을 좋아하며 상대의 대화 의도를 파악하고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말이 많아진다. 질문에 예스 노만 말해도 되는데 '~한 의도로 물어봤겠지' 생각하며 왜 예스를 했는지 히스토리를 떠들고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행동까지 예견한다. 그러다 보니 흥미로운 대화가 이어지기보다 가끔 혼자 떠들고 찝찝하게 끝나는 대화가 많다.


팀원들에게 일에 대한 요청 이후 조언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다. 1:1로 대화하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들의 역량이 제각각 다르기에 최대한 세밀하고 모두가 알아듣기 쉽게 내용을 잘게 잘게 자르고 펼치다 보니 마치 선생이라도 된 듯이 수십 분을 혼자 떠들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모르게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게 되었고 지루하다는 듯이 멍한 눈으로 쳐다보는 팀원들의 눈빛과 삭막해지는 회의실의 공기를 잊을 수가 없다.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해야지, 알아듣기 쉽게 하나하나 알려줘야지 하는 상대의 대한 섬세함. TMI다 지루하다를 떠나서 대화의 흥미를 잃게 만들고 창의성을 막아버리고 질문까지 닫아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사람이 그때 그렇게까지 말해 줬는데 질문하는 게 영 미안할 수도 있고 질문했다가 지난번처럼 또 [잔소리]를 들을까 겁먹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항상 간결하고 명확하게 하라고 한다. 이 말을 얼마 전까지는 직감적으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름의 해석을 한다. 말은 곧 대화이며 대화는 곧 오고 가는 것이기에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 말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가 아니라 상대에게 그 말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점이라고. 합리적인 이유를 이야기한다고 상대방이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맞는 말은 할 수 있으나 울림이 있어야 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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