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빽지 Jun 04. 2023

광고회사에도 귀천은 있다.

이래도 광고할 거야?

직업에 귀천은 존재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있다고 해도 어렵거나 더럽거나 힘들거나 또는 가치나 비전이나 상상하는 미래의 나의 모습과 부합하지 않다면 즉, 설정해 놓은 인생의 기준과 닿아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 보이는 모습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회에서 귀천은 따질 수밖에 없는 속성이다.


광고업도 마찬가지다. 광고라는 특정 매개체로 소비자와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나를 포함한 이들이야 말로 보이는 모습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귀천이 없다는 말은 가식일 뿐이다.


1. 광고 포맷의 귀천

예나 지금이나 광고업에 뛰어드는 취업준비생은 겉으로 보이는 광고의 화려함에 이끌리는 경우가 많다. "아 나도 저런 거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여기서 저런 거란 대게 동영상 광고를 뜻한다. 웅장한 사운드, 가슴을 울리는 카피, 미래를 제시하는 트렌드, 불가능을 가능함으로 바꾸는 기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유머. 생각이 곧 현실이 되는 기획력과 창의력의 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영상 광고는 노력과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캠페인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다. 모든 것이 동영상 광고를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보면 된다.


반대로 그 누구도 이미지 광고를 만들어보고 싶다 소리치지 않는다. 옛날에나 멋진 인쇄광고(포스터)가 있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라고 하기도 뭐 한 2023년의 이미지 광고라고 하면 수천만 개가 눈앞에서 알짱거려 애드블록 생각나는 웹/앱 배너이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보조하는 역할로 베리에이션 되거나 이벤트용인 경우가 많아 짜치기까지 하다. 기획력과 창의력보단 공장에서 찍어내듯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된 지 오래다.

 

2. 광고 매체의 귀천

앞서 동영상 광고를 선호한다고 했다. 그럼 그 동영상 광고를 가장 송출하고 싶은 매체는 어디일까? 바로 TV다. 요즘 TV 보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그와 별개로 TV광고의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다. 아직도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지상파 광고를 선호하고 있고 일부 업종에 한해선 TV광고 제품이냐 아니냐가 신뢰의 척도가 된다. 오직 TV만 광고하는 제품이 1위인 경우가 다반사다. 디지털 광고처럼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장 많은 비용을 태우는 매체이기도 해서 클라이언트와 광고회사 양쪽 모두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럼 유튜브는? 현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매체인데? TV랑 비교해서 보는 사람도 어마무시한데? 맞는 말이다. TV랑 비교하면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매체다. 운영에 따라 효율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현업에선 디지털 광고 중 일부라고 생각하고 말지 TV광고처럼 상징성을 갖는 대단한 매체로 보진 않는다. 유튜브를 포함한 모든 디지털 광고가 정확한 데이터가 나온다지만 TV광고처럼 정확히 몇 날 몇 시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노출될지도 모르고 앞서 말했듯이 우리 말고 여러 광고가 나뒹굴고 있기 때문에 현업자들 사이에서 특별한 매체로 보진 않는다. 데이터가 정확한 것은 좋지만 할 때마다 노출이 100만이니 1000만이니 찍어버리니 감흥도 없다. 디지털 광고는 퍼포먼스란 개념도 있고 확실히 운영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손맛이 있지만 그 데이터가 매일 엑셀로 들여다보는 단순 숫자 그 자체로 익숙해져 어느 순간 WHO AM I를 외치게 된다.


3. 광고업 분야의 귀천

ATL, BTL부터 오프라인, 온라인, 바이럴, SNS, 퍼포먼스, IMC 등 여러 분야의 캠페인이 있고 종합광고대행사, 독립광고대행사, 퍼포먼스대행사, 디지털대행사 등 심지어 애드테크 전문, 게임 전문, 영화 전문, 건설 전문 등 특정 산업 중심으로 대행을 하는 광고회사도 있다. 이 중 단연 업계에서 모두가 지향하는 분야는 종합광고대행사다. 흔히 알고 있는 제일기획, HS애드, TBWA 같은 곳이다.


종합광고대행사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캠페인을 다룰 줄 아는 곳으로 광고업 내에서도 손꼽히는 곳들이 해당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내로라하는 유명 브랜드가 클라이언트로 끊이질 않는 곳이다. 실상은 TV광고처럼 돈이 되는 노른자만 쏙 빼먹고 귀찮고 하찮은 일은 파트너란 명목하에 타대행사에 넘기기 일쑤다. 특히 SNS, 바이럴과 같이 운영이 주가 되는 디지털 캠페인의 일부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대행사에 내린다. 이것들은 리소스 투입 대비 돈이 되지 않는 일로 유명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변화가 생겨 종합광고대행사 내에도 큰 캠페인 하나를 자급자족 할 수 있는 부서를 세팅한 곳들이 많다. 근데 거기서도 오리지널이냐 새로 생긴 디지털 부서냐 하며 신분을 따지니 원.


이 외에도 특정 유명 디지털 대행사엔 가려고 하지 않는다. 왜? 잡다한 일들은 다한다는 것이니까. 실제로 유명 디지털 대행사 몇몇 곳은 업무량이 괴랄하다는 말들이 많다.


퍼포먼스 대행사를 갈바엔 클라이언트를 가려고 한다. 왜? 자신이 생각했던 광고는 이런 데이터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클라이언트 마케터로 가서 역량은 그대로 살리고 하고 싶은 광고를 마케팅이란 더 큰 범위에서 신나게 하고자 한다. 더 좋은 연봉과 조건은 덤.


말이 애드테크지 실상 소상공인 상대로 광고 영업을 하는 광고회사는 안 가려고 한다. 아. 이것만큼은 나도 동의한다. 이들을 난 같은 광고업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데인 것도 있고.


--------------------------------------------------

세상이란 네트워크의 일부인 광고업에서도 이렇듯 직업에 귀천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작디작은 것에도 귀천이 있는데 사탕발린 말로 귀천이 없다고 하는 분들은 차가운 사회의 속성을 알고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남의 인생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난 배운 것이 없지만 돈을 벌고 싶단 이유 하나로 일찍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위 내용처럼 화려한 광고에 현혹되어 광고업에 들어왔다. 내가 원하는 형태의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 가장 즐기고 있던 페이스북을 일로 배울 수 있다는 것에 흥미로웠다. 개인이 많은 공간이니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와 협업하는 일들이 잦아졌으며 일에서 배운 노하우를 다시 취미로 끌어와 30만이 넘는 페이지를 운영하기도 했다. 운영의 노하우를 발판 삼아 디지털 프로모션을 할 기회가 찾아왔고 성황리에 마친 뒤 그 기회는 기회를 낳아 단순 텍스트와 이미지 형태가 전부였던 내 커리어에 동영상이란 것이 추가된다. 그 동영상은 초대형 오프라인 행사를 알릴 동영상이었으니 수순대로 그 행사 기획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실력은 운을 만나 수억 단위의 캠페인을 첩첩산중으로 겪게 되며 본격적으로 퍼포먼스 광고를 경험하게 된다. 운영력에 합쳐 기획력이 생기니 클라이언트가 광고회사에 의뢰하기 힘든 앱제작에 필요한 기획을 의뢰한다. 광고업에서 기획으로 있으면서 보기 드문 전천후 스타일이 되어갔고 다방면의 경험이 기획자의 본질인 기획의 뿌리를 단단하게 했다. 그 뿌리는 기획자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혜안을 주었고 10년이 걸린 그 혜안은 단 한마디였으니 그 말 한마디로 처음 광고를 시작할 때 내가 원했던 형태의 일인 TV광고를 하게 된다. 이것이 과거의 나이다.


과거 오만을 둘러싸고 광고를 그만두려 했던 나에게 누군가 말했다. "넌 아직 광고에 대해 몰라" 맞는 말이다. 지금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이 나오고 있으니까. 그저 그 기술을 활용하고 새로운 형태 혹은 기존에 있었지만 못해봤던 형태의 광고를 끊임없이 만들고 보고 싶은 생각뿐이다.


다시 한번 직업에 귀천은 존재한다. 실력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곳으로 가라. 그게 백 번 천 번 맞다. 그렇지 않다면 나처럼 온갖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올라가라. 난 귀천이 있다는 것을 몸소 겪었기 때문에 겪지 않은 이들과 다르게 한 가지가 없다. 두려움. 소문으로만 들었던, 모르는 것에 대한, 남들이 하찮고 귀찮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경제가 힘들면 광고회사도 죽어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