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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지 Jun 18. 2023

광고회사는 감정조절을 잘해야 한다.

이래도 광고할 거야?

광고주에 대한 이야기다. 광고회사는 광고주의 돈을 받고 일을 한다. 흔히 말해 하청이다. 다른 업계는 하청이란 말을 당사자도 하는 것 같던데, 광고업 종사자들이 하청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쓰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계약서엔 어쩔 수 없이 갑과 을로 들어가지만 파트너란 마인드로 일을 해오고 있으며 그 또한 거추장스러워 광고주와 그냥 협업하는 관계 정도로 무심하면서 우직하게 일을 한다.


아무래도 남의 일을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가끔 어쩌다 사람 하나 잘못 만나면 감정적으로 피곤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꽤 오랜 시간 일을 해오다 보니 대놓고 난 쓰레기요~ 난 미친놈이요~ 하는 인간은 없지만 저마다 살아온 삶의 지혜를 응축시켜 고차원적으로 상대를 스트레스받게 한다. 대응하기 아주 애매하게 하여 부당함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나 자신이나 팀원 또는 회사에 부당함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형태로 말이다. 아, 미안하지만 터무니없는 일을 요청해서 그로 인해 야근이 잦게 되는 경우는 제외다. 이건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 보며 광고주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게 환경을 만든 광고회사의 잘못이 크다.


광고주 관련 에피소드는 따로 매거진을 내고 싶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최근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업데이트되었기 때문이다. 갓 구워낸 일화다.


얼마 전 광고주에게 약 반년만에 연락이 왔었다. 당시 우린 새로운 서비스 출시를 앞둔 광고주 요청에 따라 론칭 광고를 제안했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홀딩되었던 이를 집행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전화 온 당일 미팅을 요청했고 이를 윗분을 통해 출근 중에 알게 되었다. 사실 촉은 여기서 왔지만 일단 부름을 받았으니 한걸음에 달려갔다.

"난 부름을 받았고, 응해야 하오... 언제든." - 오버워치 (출처: 블리자드)


안면마비 이후 첫 대면하는 어웨이 미팅이라 긴장도가 높았다. 도착하니 회의 중이라 잠시 대기하라는 직원분의 안내가 있었다.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마음을 달래며 표정 연습을 하고 있었고 얼마 되지 않아 직원분이 다시 왔고 미팅 장소로 안내해 주셨다.


그곳엔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대표와 실무자 여덟 분이 앉아 계셨다. 아무런 사전 안내 없이 이런 회의자리에 참석하게 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린 과거 대표와 실무자 두 분 정도와 컨택을 했었기에 그들을 제외하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자 명함을 준비하고 있는데 대표는 이 절차를 쌩깠다. 그러고선 첫마디가 일전에 만들었던 디자인은 실망했다는 말이었다. 이는 현재 광고주 프로모션 페이지에 올라가 있지만 납품했던 우리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돈을 받지 않았다. 꼽을 주기 위한 소리로 밖엔 들리지 않았다.


광고주가 말했다. 이번에 집행할 일에 대해 담당자가 바뀌는 것을 원치 않으니 같이 오신 분이 맡아서 진행할 거냐는 질문이었다. 나를 지목한 질문이었고 그렇다고 대답을 하려는 찰나 보이스가 겹쳤다. "근데 누구시죠?" 약 1분 정도 소요된 대화에서 그라데이션으로 3번이나 화가 솟구쳤다. 3번이나 본 사람에게 할 비즈니스 예의가 아니었다. 정말 기억이 안 난다면 '지난번에...'와 같이 운을 띄웠더라면 장단이라도 맞춰주고 넘어갈 텐데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본론은 더 가관이다.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스피커 폰으로 본인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일 얘기를 한다. 그러고선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한 우리들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는데 급급하기 짝이 없다. 눈치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이 매우 빈약했다. 그러고선 다짜고짜 내부 마케팅 팀처럼 움직여 줬으면 한다는 부탁을 하며 어떻게 광고를 했으면 하냐는 뜬구름 잡는 결론에 다다른다. 나온 것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문의를 하고자 마련된 회의였다. 마치 내부 회의 같았다.


우린 광고주 측에서 아직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가 첫 번째. 광고주가 말한 타겟과 은연중에 나온 매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두 번째로 점찍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불러달라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그 자리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약 30분에 걸친 회의에서 말한 건 이게 전부였다.


"비즈니스 매너가 없네"

"커피 한잔 마시러 왔다고 생각하자"



내부 조직처럼 일해 달라거나 처음부터 하나하나 같이 고민하자는 식의 요청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광고회사는 위 예시와 같이 일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에서 치욕스럽고 곤욕스러운 언행을 자주 맞이한다. 근데 이게 앞서 말했듯 고차원적이라 수준급의 대응력을 요구할 때가 많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건 광고회사에 다닌다면 혹은 다니려면 광고주나 외부인에게 감정적인 호소는 자제했으면 한다. 쉽게 말해 F가 아닌 T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광고주는 되느냐 안되느냐, 방법이 있느냐 없느냐,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 없다면 무엇을 준비하느냐가 듣고 싶은 것이다. 저런 것에 휘둘려 감정적인 호소로는 일을 처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상황만 악화되어 회사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피해가 가지 않도록 거절하더라도 비즈니스임을 직시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여유와 담백함을 지녀야 한다.


나는 과거에 감정적으로 호소하다 5초 정도 정적이 있어봤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50초 같은 5초의 고민 끝은 6하 원칙하에 수정하겠다와 잘못 인정이었고 달나라로 갈뻔한 끈을 겨우겨우 지구에 안착시켰다. 감정적 호소는 상황을 나쁘게만 만들 뿐이다.


요즘 무례한 손님에겐 무례하게 대하는 게 마치 잘한 것처럼 치켜세우는 영상들이 돌아다닌다. 누군가는 박수쳐줄 수 있겠지만 정작 힘든 상황에 당신을 감싸줄 우산 따윈 없을 것이다. 책임 없는 공감이다. 조절하지 못한 행동의 결과는 결국 본인이 치워야 하는 것. 남이 치우길 바란다면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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