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연기로 영화의 개연성을 만들다
작년의 <암살>부터 올해 <아가씨>와 <덕혜옹주>까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충무로의 징크스(?)였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흥행이 어렵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주 개봉한 <밀정>은 그 흥행의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지운 감독의 6년 만에 한국영화라는 점과 배우 송강호, 공유라는 조합은 이름만으로도 핸드폰 결제로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개봉 소식에 아침부터 조조로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가 시작하고 10분 정도 영화관 직원의 실수로 비상구문이 열려있는 채로 영화를 봤다. 나는 이런 부분에 아주 예민한 편이라 굉장히 짜증이 났다. 빛으로 영화 스크린의 3분의 1이 밝게 나와서 불쾌했지만, 김지운 감독이 만든 영화를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달콤한 인생>를 보고 난 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유려한 스타일과 인간의 모순된 마음을 잘 다루는 감독의 연출 방식이 좋다. 이번 영화에서는 배경음악을 아주 재치 있고 센스 있게 활용하여 보는 내내 눈과 귀 모두 즐거웠다. [LouisArmstrong의 WhenYou`re Smilling]이나 [Ravel 의 Bolero]가 그러했다.
송강호와 공유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밀정>에 대한 많은 글을 통해서 전파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하지 않겠다. 송강호는 말할 필요가 없이 대단한 연기를 했고, 공유는 최근 <남과 여> <부산행>에서 보여준 연기보다 훨씬 좋았다. 특히 초반에 송강호와 만나는 장면은 공유의 매력이 한껏 드러났다.
배우 엄태구(하시모토 역)의 연기를 보고 놀랐다. 영화 <잉투기><차이나타운>을 통해서 연기 꽤나하는 배우라고 생각을 했지만,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는 차원이 달랐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엄태구가 될 거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을 정도다. 송강호를 의심하고 몰아붙이는 장면에서 대배우 송강호에게 기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졌다. 물론 역할의 영향과 송강호의 배려도 한 몫을 했겠지만, 배우 스스로 해낸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싸대기를 때리는 장면은 강렬했다. 그 장면에서 손이 움직이는 속도가 대단히 빠르게 느껴졌다. 복싱선수로 데뷔시키고 싶다.
다시 만날 때는 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장담 못해
누가 밀정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또 의심한다. 의열단장의 제안에 흔들리는 송강호를 보면서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이야기의 구조만 놓고 보면 송강호의 마음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임시정부에 있다가 일본 경찰이 되고, 일본 경찰인데 의열단장의 말 몇 마디에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관객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김지운 감독은 그런 중요한 장면에 이병헌과 송강호를 만나게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카메오로 나온 이병헌은 실제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을 모델로 한 정채산 역을 맡았다) 연기와 대사를 통해 설득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고 변하는 이유는 대단한 경험이나 계기가 아니더라도 사소한 생각이나 인물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콤한 인생>에서의 이병헌이 그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병헌 목소리는 여전히 좋았다.
영화 <밀정>은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 역사적으로 학계에서는 일본 순사였던 황옥은 의열단 장인 김원봉의 지령을 받아 의열단의 무기 반입을 돕다가 체포됐으나 공을 세우기 위해 일제의 밀정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후반부에서 흥행을 고려해서 그런지 아쉬움이 남는다. 굳이 그렇게 마무리를 했어야 하나...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관객들의 마음을 영화가 정리를 해주니 <곡성>을 다 보고 나왔을 때 찝찝한 느낌이 싫었던 사람은 편안하게 돌아갈 수는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