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백구 May 15. 2019

새로운 연인도 죽이지 못한 라디오스타

영화 <논-픽션, Doubles vies, Non-Fiction>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정말 그럴 줄 알았다. 1979년 영국 출신의 듀오 버글즈는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고 노래했다.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을 밀어낸다는 의미다. 움직이는 사진인 비디오는 소리만 나오는 라디오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팽배했던 시기다. '죽일 것'이라는 미래형도 아닌 '죽였다'라는 과거형의 이 노래는 당시 위기감이 전달한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OST로도 쓰였다. 영화는 여자 주인공이 오래 기간 사귄 남자친구를 떠나고 새 남자를 만나는 이야기다. 비디오 같은 새 남자가 헌 남자를 몰아낸 셈이다.


<논-픽션>은 이와 유사한 비교 형식을 취한다. 비디오와 오디오가 아닌 E북과 종이책이다. 나아가 영상 콘텐츠가 쏟아지는 세상에 글 자체에 대한 회의론적 시각도 등장한다. "컴퓨터와 함께 자란 요즘 세대는 달라" "글을 덜 읽게 됐잖아" "블로그가 활성화되면서 글 쓰는 사람은 많아졌어" "읽는 사람은 없고 쓰는 사람만 많아" "아무 말 대잔치 아냐?" 등의 논쟁은 묘한 리듬을 형성하며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종이책의 위기를 드러낸다.


성공한 편집장 알랭은 종이책과 E북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 디지털 마케터 로르는 종이책의 시대를 바꾸고 싶어 한다.  알랭의 아내 셀레나와 6년째 내연관계인 작가 레오나르는 자신의 연애사를 책에 썼다. 그의 아내 정치인 비서관 발레리 남편의 연애를 눈치챘다.

재밌는 점은 논쟁을 하는 이들의 관계다. 관계 역시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으로 나눠진다. 다섯 인물의 복잡하면서도 가벼운 관계 속에 논쟁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대형 출판사 편집장 알랭(기욤 카네)은 디지털 마케터 로르(크리스타 테렛)와 내연관계지만 종이책과 E북에 대한 견해 차이로 종종 부딪친다. 알랭의 부인인 배우 셀레나(쥘리에트 비노슈)는 작가 레오나르(빈센트 매케인)와 6년째 밀회를 즐기고 있다. 레오나르의 아내 정치인 비서관 발레리(노라 함자위)는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지만 모른 척한다. 레오나르는 셀레나의 남편 알랭에게 자신의 책 출간을 이야기하지만 알랭은 반려한다.

관계가 얽혀서 발생하는 사건은 없다. 다섯 사람은 그저 얽힌 상태로 살아간다. 새로운 관계가 오래된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양 관계를 지속시켜주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한쪽의 단점을 다른 한쪽이 보완한다고 할까. 새로운 관계는 오래된 관계의 지루함 속 활력을 불어넣고, 오래된 관계는 새로운 관계의 불안함을 해소해준다. 개별 관계들의 마찰이 있을지 언정 모두의 관계는 문제없이 흘러간다.


마지막 장면이 이를 대변한다. 로르를 제외한 네 사람이 모이는 부부동반 모임이다. 알랭과 셀레나 부부, 레오나르와 발레이 부부는 함께 식사를 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이 모임에서 긴장하는 사람은 이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관객뿐이다. 네 사람의 시간은 문제없이 흘러간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레오나르와 셀레나가 옆자리에 앉을 때 관객들은 웃음이 나지만 인물들은 개의치 않는다.

모든 픽션은
어느 정도 자전적이죠


앞서 레오나르가 출간한 소설은 논란에 휩싸인다. 자신의 연애사를 소설에 담았기 때문. 그는 해당 소설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날 선 비판을 받는다.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이 실제 인물로 볼 수 있을 만큼 디테일하다는 점에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논란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레오나르는 “모든 픽션은 어느 정도 자전적이지 않은가”라고 대응한다.


영화에는 ‘팩션’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허구를 의미하는 ‘픽션’과 사실을 의미하는 ‘팩트’를 합성한 단어다. 레오나르의 소설은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무엇이 사실인지 허구인이 명확히 구분하기 모호한, 말 그대로 팩션이다. 이 모호함은 인물들의 관계와도 연결된다. 새로운 관계를 감추고 오래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새로운 관계의 인물을 지켜주는 것인지, 오래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인지 답을 내리기 어렵다. 나아가 디지털 시대에 E북과 종이책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대비되는 것들은 일종의 길항관계다. 서로를 긴장시키고 때론 상쇄하지만 동시에 유지되는 관계랄까. 사실 없는 허구는 없고, 오래된 것이 없다면 ‘새롭다’는 말은 쓸 수가 없다.  길항관계는 복잡한 변화 속에서 부각되 한다. E북과 종이책처럼. 비디오와 라디오처럼. 70년대 버글즈 외쳤던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였다’는 말은 그저 당시를 추억하는 매개체가 돼버렸지 않나. 비디오는 라디오스타를 죽이긴 커녕 라디오의 매력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논-픽션>의 원제가 '이중생활'임을 감안하면 메시지는 더욱 명확해진다.


<논-픽션>은 여러 모호한 관계를 보여주면서도 무엇이 답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같은 대화 안에서 갈라지는 의견을 통해 모순됨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마치 대척점이 있을 법한 것들이 서로를 긴장시키면서도 함께 흘러가는 시대적 상황을 그저 보여줄 뿐이다. 전작 <퍼스널 쇼퍼>에서 스마트폰 시대의 모순을 다루던 감독은 디지털화와 변하는 우리들의 관계로 주제를 확장했다. 감독은 모순적인 '시대의 물살'을 인정해야 한다는 듯 이같이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뿐






매거진의 이전글 토르가 망치 때문에 당황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