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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Jul 22. 2019

실화는 아닌데 그렇다고 지어낸 이야기도 아니에요

영화 <소수의견> 2013년 제작, 2015년 개봉

이 영화의 사건은 실화가 아니며
인물이 실존하지 않습니다.


영화 <소수의견>은 실화가 아니라고 한다. 시작부터 위 자막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는 '용산 참사'에 대한 이야기로 알려졌다. 이야기의 배경 때문이다. 첫 장면은 뉴스에서 보던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강제 철거 현장에서 경찰이 철거 측 용역 직원들과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 철거민들을 진압하고 철거민들은 격하게 반항한다. 화염병을 던지는 철거민들과 철거민에게 폭행을 가하는 경찰의 모습은 특정한 사건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가운데 철거민의 아들이 숨지고, 진압에 투입된 의경이 사망한다. 실제 참사 현장에서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사망한 일이 오버랩된다. 검찰이 사건 관련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듯 영화 속 배경과 현실의 이야기가 상당 부분 겹치는 탓에 '용산 참사 영화'라 불리게 됐다. 그러나 <소수의견>의 핵심 메시지는 실제 사건에서 특정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편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실을 상기시키는 배경은 도구로써 활용하고, 이후 이야기는 법정 드라마를 통해 사회구조적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데에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학벌도 경력도 부족한 2년 차 국선전담 변호사 진원(윤계상)은 강제 철거 현장에서 경찰을 죽인 현행범으로 체포된 재호(이경영)를 변호하게 된다.

재호는 경찰이 아들을 죽였다며 정당방위에 의한 무죄를 주장한다. 진원은 기자 수경(김옥빈)과 함께 여론을 형성하고 선배 변호사 대석(유해진)과 국민참여재판 및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준비한다.


영화 <소수의견>은 손아람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 중반 국가배상 청구소송의 법무부 대리인 역할로 등장한 사람이 작가 본인이다.) 한 사건를 통해 공권력의 작동 방식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강제 철거 현장에서 철거민의 아들과 의경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관련 의혹점점 커지자 검찰은 공권력 전체의 문제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개인을 희생시키는 무시무시한 일이 진행한다. 철거용역인 수만(김형중)의 거짓자백이 시작이다. 그는 자신이 재호의 아들 신우(최수한)를 철거민 진압과정에서 죽였다고 말한다. 재호는 의경인 희택(노영학)을 죽였지만, 아들인 신우가 폭행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당방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우를 폭행하고 죽인 사람은 수만이 아니라 경찰이라고 진술한다.


사람이 죽는 순간
거긴 철거 현장이 아니라
살인 현장이에요.



신우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이 의문은 확대되지 않는다. 영화 이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경찰이 신우를 죽였다는 것을 믿고 재호의 주장에 동조하게 된다. 수만의 진술에 진정성이 없어보이는 점, 기자 수경이 재호를 변호하는 진원에게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의혹을 제기하는 장면, 검사 재덕(김의성)이 재호의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하는 장면 등은 재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수경은 사건을 취재하며 "사람이 죽는 순간 거긴 철거현장이 아니라 살인 현장이에요. 근데 작전을 계속 벌였다? 경찰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해당 사건에 거대한 배후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사건을 확대하는 기능을 한다. 초반부 설정들에 의해 관객들은 재호에게 동정하게 되고 반대에 위치한 검사 재덕을 악으로 간주한다.


중반부로 넘어가면 관객의 관심은 죽은 사람이 아닌 부조리한 구조로 옮겨간다. 박경철 국회의원(곽민석)이 '서북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보도 요청'이라는 문건을 진원과 수경에게 보여주면서다. 청와대가 해당 문건을 경찰에게 보내 철거현장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에 대한 관심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장면이다. 건설사, 조합원, 지방자치단체 등을 언급하며 모두 결탁해 일으킨 사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결국 재호는 공권력에 희생양이라는 논리가 성립되고, 이는 국가배상 청구소송으로 이어진다.


개인의 문제가 국가의 문제로 변하는 순간이다. 검찰은 개인이 공무원을 살해한 사건으로 끝내려 했다. 하지만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뒤섞인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이기에 조용히 끝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를 조작했다. 조작은 문제를 키웠다. 검찰은 조작을 감추기 위해 수사기록과 진압 경찰 명단을 숨겼다. 사람이 죽은 살인사건 현장을 깨끗하게 치웠다. 비상식적이고 의문만 쌓이는 이 같은 상황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걸까.

국가라는 건 말이다.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누군가는 봉사를 하고,
그 기반 위에서 유지되는 거야.


배후가 없다. 영화는 개인의 문제, 국가의 문제를 지나 다시 개인의 문제로 회귀한다. 모든 재판이 끝나고 검사 옷을 벗고 변호사가 된 재덕은 진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가 나한테 전화라도 한 통 걸었을 것 같아? 웃기지 마. 나는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냐"라며 배후를 부정한다. 그러면서 "국가라는 건 말이다.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누군가는 봉사를 하고, 그 기반 위에서 유지되는 거야. 말하자면 박재호는 희생을 한 거고, 나는 봉사를 한 거지"라고 말한다. 권력을 가진 부도덕한 한 개인이 어떤 짓을 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사다.


결국 시스템을 지적한다. 개인과 국가의 관계의 부조리함은 불합리한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영화에서 시스템은 '법'이다. 그런데 법은 이용될 뿐, 개인의 행위보다 앞서지 못한다.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변호사, 검사, 판사, 기자 등 개인들에 의해 희생되는 또 다른 개인이 드러난다. 이 사건에 시스템은 무기력하다. 사건은 각 당사자들의 행위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 검사가 조작한  거짓진술, 기자가 만든 여론, 청와대가 만든 문건 등은 형사사법시스템 결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메시지는 의미 있지만, 플롯의 허점은 아쉽다. 중반부 이후 ‘100원 국가배상 청구소송’은 온데간데없고, 재호의 무죄 여부에만 관심을 갖는다. 국가에 책임이 있다며 싸우기 시작한 주인공은 어디 갔는가. 메인 플롯이 무너진 것이다. 여론을 만들라는 문건을 작성한 청와대와 문제제기하는 국회의원의 이야기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캐릭터들도 평면적이다. 변호사 진원과 대석은 정의로움의 상징이다. 부당함에 분노하는 한 가지 성격밖에 없다. 검사 재덕도 마찬가지다. 아주 흔한 클리셰 악역이다. 비열한 표정으로 나쁜 행동만 한다. 기자 수경 이야기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도록 돕은 기능적 캐릭터에 불과한 점도 아쉽다.

'소수의견'은 소수의 의견이란 말이 아니다. 법적으로 대법원의 판결,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주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반대의견, 혹은 다수의견과 결론은 같이 하지만 논리는 달리하는 별개의견을 가진 대법관, 헌법재판관이 판결문에 표시하는 의견을 말한다. 영화에서는 배심원들 전원이 재호의 정당방위 주장에 동의하지만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한다. 결국 힘 있는 한 명의 생각이 관철되고 다수의 의견은 '소수의견'이 된 셈이다.


영화 <소수의견>은 지금의미가 있다. 비록 6년 전 제작됐지만 수많은 사회적 사건을 거쳐온 현재 우리에게 영화의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화가 아니다"라면서도 현실 같은 이야기에 분노를 일으키고 "나라면 절대 안 멈다. 누군가 박살날 때까지"라며 진원의 대사로 폭발하더니 검사 재덕이 "넌 결국 뭘 한 거냐, 네가 아는 게 뭐냐"로 허무하게 끝난다. 무언가에 강력하게 분노했지만 허무하게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최근 몇 년간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오프닝으로 돌아가 보자. "실화가 아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 영화는 끊임없이 현실을 상기시키며 묘한 충돌을 일으킨다. <소수의견> 속 기자 수경은 진원의 생각에 균열을 내는 인물이다. 수경의 다음 대사는 실화가 아니라는 오프닝에도 균열을 낸다. 재원을 찾아가 철거용역이 아닌 경찰이 재호의 아들을 죽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경은 재원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이렇게 말한다.


소설 아닙니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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