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우리는 나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by 글쓰는 백구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200만 명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현재 시국에 대한, 혹은 가까운 미래에 대한 평가와 예측이 수많은 보도를 통해 쏟아지고 있습니다. 헌정 역사상 두 번째 탄핵소추 가결, 유래 없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피의자 입건으로 정치인들은 상황이 수습된 이후에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 이 상황을 통해 얻게 될 정치적 이득은 무엇인지 계산하기에 바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보도가 나온 10월 24일보다 앞선 10월 13일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모든 것을 알고 만든 것처럼 현 시국에 적합한 형태로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이 가진 총체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가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립니다. 증거는 유우성 씨의 동생의 증언 ‘자백’이었습니다. 그 외에 각 종 서류 증거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조작된 것이라고 밝혀지고, 심지어 중국에서 누가 이런 서류를 조작했는지 밝혀달라는 요청까지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왜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아갔으며, 검찰은 서류가 조작되어 있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요.


70년대 간첩으로 유죄를 받았던 사람들이 21세기가 돼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70년대부터 40년간 이어진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조명하고 있는 영화 <자백>은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짓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짓을 했는지, 또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국가는 개인에게
어떤 짓을 할 수 있는가


언론인 ‘최승호’ PD는 김재철 당시 MBC 사장 퇴진을 위한 파업으로 2012년 해임되었습니다. 그는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의혹’, ‘4대 강 사업’, ‘검사와 스폰서’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한국 PD연합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PD상’ 을 수상 했습니다. 현재는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 앵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최승호 PD의 열정과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4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한 ‘간첩 조작 사건’이 왜 이제야 그의 손에 이끌려 대중에게 나왔을까요. 언론이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시민들은 까막눈이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언론의 태도겠지요. 태도에 따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 생기고, 그 관점은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보면, 해결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승호 PD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중요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 뒤에는 ‘그’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치 <포레스트 검프>처럼 박정희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그가 등장하지 않는 곳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역사가 밝혀낼 것입니다. 며칠 전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그는 '나이가 들어서' '착각했었다'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놀라운 증언으로 하루 종일 뉴스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임에도 14만 명이 넘는 누적관객수(141,677명. 2016년 12월 9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사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서 <자백>은 현재 <무현, 두 도시 이야기>(187,672명. 2016년 12월 9일 기준)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흥행 기록입니다. 시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이례적인 흥행은 현 시국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화적으로 군더더기는 있습니다. 국정원 조사 중에 자살한 탈북자의 딸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은 윤리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스토리나 화면 구성, 배경음악이 주는 긴장감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지루하지 않게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최승호 PD가 말하는 언론의 태도, 영화가 보여준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 이 세 가지를 비춰 볼 때 우리나라가 현재 얼마나 중요한 시점에 와있는지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70년대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피해를 당했던 제일교포 김승효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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