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 사이의 길항관계
사랑하는 사람과 꿈을 위한 서로의 파트너가 되겠다는 것은 욕심인가.
라라 랜드(LA LA Land)는 로스앤젤레스를 부르는 별칭이지만, 비현실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위플래쉬>의 감독 ‘다미엔 차 젤레’의 두 번째 작품이다. 감독은 <라라랜드>를 2006년에 각본을 완성했고 당시 데뷔작으로 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신인감독 입장에서 제작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위플래쉬>를 먼저 개봉시키고, 명성을 얻은 뒤에 <라라랜드>는 대중을 만나게 된다. <위플래쉬>는 일종의 <라라랜드>를 위한 발판이었을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주인공인 세바스찬과 미아 역할에 마일즈 텔러와 엠마 왓슨이 내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위플래쉬> 주인공 역을 맡았던 마일즈 텔러는 출연료에 불만을 토로했고 감독은 이를 거절했다. 엠마 왓슨은 이 영화 대신 <미녀와 야수> 택했다. (출처 : hollywoodreporter )
<라라랜드>는 음악적으로 훌륭하다. 뮤지컬 노래 가사가 영화의 스토리에 아주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는 꽉 막힌 도로에서의 첫 노래는 영화 전체를 축약해놓은 것 같다. 고전 뮤지컬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음악으로 스토리뿐만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뮤지컬 영화의 효과를 톡톡하게 해낸다.
뮤지컬 노래가 이어질 때는 주로 원테이크 형식의 연출이 많이 이루어졌다. 실제로 한 번에 찍은 것은 아닐 것이다. 중간중간 편집점이 보인다. 그러나 끊김 없이 화면이 이어지기 때문에 원테이크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의 흐름을 군더더기 없이 배우들의 동선, 카메라 워크, 조명을 활용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놀랍다. 예를 들어 핀 조명으로 인물을 비추는 장면은 현실보다는 판타지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LA를 배경으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영화다. <위플래쉬>에서 재즈의 즐거움을 느끼신 분이라면 이 영화에서도 제대로 된 재즈를 즐길 수 있다.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를 하는 클럽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미아는 배우로 성공하는 것이 꿈이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꿈 때문에.
오래는 못 살아도
갈 곳엔 빨리 갈 수 있어
파티에서 빠져나온 두 사람. 미아가 자신의 자동차를 찾고 있다. 세바스찬은 턱 밑에 자동차 리모컨을 대고 버튼을 누르면 빨리 차를 찾을 수 있지만, 암에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 한 말이 위 대사다. 이 영화는 사랑과 꿈의 균형을 말하는 영화다. 위 대사는 ‘사랑을 오래 유지하지 못해도 꿈은 빨리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랑과 꿈을 모두 이룰 수는 없을까?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생각했던 1인극 공연에 세바스찬은 오지 않았다. 미아는 실망했고, 이들의 관계는 망가진다. 세바스찬은 미아와 미아 엄마의 전화통화를 듣고, 자신의 꿈을 접었고 키이스(존 레전드)의 밴드에 들어갔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밴드의 스케줄로 인해 미아의 공연에 가지 못했다. 미아를 위한다고 시작한 일이 미아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것이다.
미아는 이별을 고하고 떠난다. 이후 미아의 캐스팅 연락을 대신 받은 세바스찬은 미아를 찾아가 소식을 들려준다. 캐스팅 오디션이 끝나고 처음 서로 호감을 느꼈던 곳(파티가 끝나고 자동차를 찾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 초반에는 춤과 음악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춤과 음악이 없는 LA의 언덕이 판타지가 사라진 그들의 관계를 대변하는 것 같다. 그리고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미아는 ‘우리’에 대해서 물었지만, 세바스찬은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나’의 계획을 실행하겠다는 말과 함께 ‘너’의 꿈을 펼치라고 한다. 결국 둘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 필요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사랑할수록 꿈과 멀어져 갔다. 꿈을 꾸면 사랑이 멀어져 갔다.
마지막 장면은 미아의 변화로 시작된다. 교통체증으로 길이 꽉 막혀도 대본에 집중하느라 앞차가 가는 것을 못 보던 미아가 길이 막히자 극장은 나중에 가자고 말한다. 다른 길로 빠져서 간 곳에 세바스찬이 운영하는 클럽을 지나게 된다. 클럽 이름은‘셉스(Seb's)’. ‘치킨 꼬치’로 클럽 이름을 하겠다던 세바스찬은 미아가 추천한 ‘셉스’라는 이름으로 클럽을 운영한다. 세바스찬이 ‘치킨 꼬치’를 클럽 이름으로 하려고 했던 이유는 약간 섹슈얼한 의미로 당시 미아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꿈을 위해 자신의 이름만이 담겨있는 ‘셉스’라는 이름으로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미아 역시 남편과 아이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스타가 되었다. 성공한 서로를 마주쳤을 때, 핀 조명이 켜지고 두 사람만을 비춘다. 과거로 돌아가 서로의 사랑과 꿈을 모두 이루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는 마치 두 사람의 사랑과 꿈을 함께 이루는 것은 현실에서는 어렵고, 환상 혹은 (영화 제목처럼) 비현실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꿈을 위한 서로의 파트너가 되겠다는 것은 욕심인가. 세바스찬은 밴드 투어를 함께 해주지 않는 미아에게 서운했다.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미아와 함께 할 수 없는 세바스찬은 과거 미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 꿈을 위해 사랑을 요구했고, 거절당했다. 사랑을 요구받았지만, 꿈을 위해 거절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사이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