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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Dec 20. 2016

<줄리에타 Julieta>

진실되게 거절당하는 것이 거짓되게 사랑받는 것보다 낫다.

‘줄리에타’는 기차 안에서‘소안’이란 남자를 운명같이 만난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에 빠진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의 행복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딸 안티아가 사라진다. 12년 동안 딸을 잊고 살아간다. 그녀는 딸 안티아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줄리에타>로 개봉했지만, 원제목인 <Julieta>는 스페인어로 ‘훌리에타’라고 발음해야 한다. 영화에서도 당연히 훌리에타라고 부른다.
이 영화는 원작이 있다.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떠남>에는 총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그중에서 3개의 단편(우연, 머지않아, 침묵)을 엮어 알모도바르 감독의 감성을 불어넣어 만든 영화가 <줄리에타>다. 3개의 단편 주인공 이름이 모두 ‘줄리에타’인 것이 영화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영화는 원작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와 영상을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는 요소들을 갖고 있다.


스페인의 거장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아주 강렬한 색감과 화려한 음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의 영화들에서는 강인한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영화 <줄리에타>에서는 조금 다르게  쓸쓸하고 어둡다. 상당히 우울하고 가녀린 엄마가 주인공이다.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1977년 작품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서도 ‘콘치타’ 역할을 2인 1역으로 설정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 영화를 좋아해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고 한다.

왼쪽부터 알모도바르 감독, 영화<줄리에타>의 줄리에타 역을 맡은 아드리아나 우가르테, 엠마 수아레스

2인 1 역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설정을 가진 영화다. 젊은 줄리에타와 중년의 줄리에타를 각기 다른 배우가 연기한 점이 흥미롭다. 젊은 줄리에타는 ‘아드리아나 우가르테’, 중년의 줄리에타는 ‘엠마 수아레스’가 연기했다. 젊은 줄리에타는 강렬한 색채의 패션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중년의 줄리에타는 지치고 우울한 삶이 느껴지지만 화려한 패션으로 상반된 이미지를 모두 보여준다.




이 영화는 상반된 캐릭터들이 역설적으로 공존한다. 줄리에타는 어부 남편 ‘소안’을 따라 이전과 완전하게 다른 삶을 산다. 이전의 삶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끼지만, 가정을 이루며 구속감도 느낀다. 평범하게 살아온 그녀에겐 새롭고도 이상한 삶이었지만 안락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난 자유와 구속감을 함께 느끼고 있어


사람이 죽는 것과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역설적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기차 안에서 정체불명의 사람이 죽은 것을 안고나서, 소안과 줄리에타는 사랑을 나눈다. 줄리에타는 편지를 받고 소안의 집에 찾아가 사랑을 나누는 데, 바로 그 전날 소안의 전 부인 장례식이 있었다.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인 죽음과 섹스가 갖고 있는 열정이라는 요소를 지속적으로 동시에 비추어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이런 삶의 아이러니는 설정과 스토리에서뿐만 아니라 색깔을 이용해서 표현된다. 빨강과 파랑이라는 두 가지 색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파랑은 어두운 과거와 불안한 감정, 미스터리를 보여준다. 빨강은 생명력과 열정을 상징한다. 흥미로운 장면은 파랑과 빨강이 동시에 사용되었을 때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소안과 줄리에타가 기차에서 만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파란 옷에 파란 스타킹을 신고 파란 책을 들고 있는줄리에타가 빨간 스웨터에 빨간 외투를 입고 빨간 소파에 앉아있다. 직장을 잃고 기차를 탄 줄리에타가 소안을 만나 새로운 삶의 활기를 띄는 것을 상징적인 색깔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파랑과 빨강은 굉장히 많은 장면에서 활용되고 있으니, 찾아가며 보는 것도 이 영화를 즐기는 팁 중에 하나다.


핵심이 되는 주제 중에 하나는  ‘죄책감’이다. 우연히 기차 앞 좌석에 앉은 남자의 죽음, 남편 소안의 죽음, 딸 안티아와의 이별에 대해 줄리에타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의 행동과 무관하진 않지만 죄책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녀에게 죄책감은 힘든 상황이라도 아픔을 짊어지고 가는 그녀의 의지이기도 하다. 죄책감 때문에 우울한 삶을 살아온 줄리에타는 딸은 그렇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말한 적은 없지만, 자신의 엄마가 느끼는 죄책감을 딸 안티아는 알았다.


내 죄책감이 전염병처럼 네게 옮은 거야




이 영화는 '모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가족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줄리에타는 딸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녀는 12년이란 시간 동안 딸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때 난 녹초였지만
넌 황소처럼 강했어


소안의 죽음이 자신에게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내색하지 않는 딸은 황소처럼 강하지 않았고, 이를 몰라주는 엄마 줄리에타 곁은 떠난 것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고, 밥을 함께 먹는 가족에게도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모르게 가족들을 조금씩 속이고 있는 것이다.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모든 관계는 그렇게 의도치 못하게 물들어가듯이 어긋난다. 젊은 줄리에타를 연기한 '아드리아나 우가르테'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실되게 거절당하는 것이
거짓되게 사랑받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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