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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Dec 25. 2016

<우리들 The world of Us>

감정은 늙지 않는다.

외톨이 ‘선’(최수인)은 여름방학 첫날, 전학생 ‘지아’(설혜인)를 만난다. 여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추억을 쌓는다. 개학 후, 선을 따돌리는 ‘보라’(이서연)가 끼어들며 선과 지아의 관계는 틀어진다. 둘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윤가은 감독

단편영화 <손님>, <콩나물>을 통해 재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우리들>은 베를린 영화제 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케 했다. 그 외에도 전 세계 32개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사실상 단 한 편의 영화로 올해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한 명으로 떠오른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윤가은 감독의 팬이 된다.

오디션 3개월, 리허설 3개월

감독은 캐스팅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준비된 연기를 보는 오디션을 하지 않았다. 오디션에 참가한 배우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파악하고 배역을 정했다.
촬영 전까지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주지 않았다. 리허설 3개월 동안 게임과 즉흥극 놀이, 상황극 등을 통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에 따른 아이들의 감정을 느꼈다. 촬영 날에는 씬마다 '오늘 찍을 내용은 이거야'라고 알려주었다. 준비가 필요한 장면은 전 날에 쪽대본을 보여주었다. 즉흥적인 연기를 하도록 연출했다. 배우들만의 말과 행동이 나오길 바랐다. 그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례적으로 카메라 두 대를 사용했다.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은 한번 쏟아내면 다시 찍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유용하게 카메라가 사용되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아역배우들의 연기다.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면, 실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오디션 3개월, 리허설 3개월이라는 독특한 준비과정과 감독의 배우를 다루는 방식이 그들의 연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선'은 왕따를 당하고 있다. 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던 '지아'가 전학을 오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지아와 선은 공통적으로 결핍이 있다. 그러나 결핍의 종류가 다르다. 지아는 돈이 많지만, 엄마의 사랑이 없다. 선은 엄마의 사랑은 많이 받지만, 금전적으로 여유 있지 않다. 지아는 선과 선의 마가 다정하게 모습을 보고 상처를 받는다. 상처받은 지아는 자신의 감정적 회복을 위해 선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네 집 왜 이렇게 덥냐’ 에어컨이 없는 선의 집보다 자신의 집이 상대적으로 부유하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이후로 서로의 감정이 조금씩 어그러진다. 개학 후에는 중간에 ‘보라’가 끼어들며 갈등을 커진다. 지아와 선은 보라를 통해 서로의 비밀을 폭로하며 관계를 극단으로 몰아간다.





영화는 '선'과 그의 친구들이 피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위바위보를 통해 피구 팀을 나눈다. 그런데 가위바위보를 하는 아이들이나 선택된 친구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로지 선의 표정만을 보여준다. 선의 표정에서 내가 뽑힐까, 언제쯤 내 이름을 부를까, 마지막에 뽑히는 건 아닐 하는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느껴진다. 다른 인물들을 비추지 않은 것은 아이의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촬영은 주로 주인공 선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소주병을 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들어오는 아버지를 비추고 내려놓는 소주병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화면은 지속적으로 선의 얼굴만을 보여준다. 주변 상황보다 선의 감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손톱을 복선 혹은 상징으로 활다. 보라는 친구들끼리 편을 가르는 위해 '매니큐어' 이용한다. 한편, 지아와 선의 관계는 '봉숭아물'과 같다. 봉숭아물이 가장 진하게 들어있던 여름방학 때 가장 추억이 많다. 점점 흐려지는 봉숭아물은 갈등의 크기와 반비례하고, 그 위에 덧칠한 매니큐어는 혼란스러운 아이의 마음을 상징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선의 손톱은 일종의 복선이다. 지난여름, 함께 물들였던 봉숭아물이 선의 손톱 끝부분에 아주 조금 남아있다. 이는 둘의 관계가 봉숭아만큼의 희망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다.




가장 어린 '윤이'가 영화 말미에 커다란 교훈을 준다. 선의 동생 ‘윤이’는 친구와 자주 싸운다. 심지어 맞고 상처가 난 채로 집에 온다. 맞고 온 동생을 보고 속상한 선은 때린 친구와 놀지 말라고 한다. 윤이는 맞고 나서 다시 그 친구와 놀다가 왔다. 선은 그러면 더 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화를 낸다. 그때 윤이는 이렇게 말한다.


때리고 또 때리면 언제 놀아?
나는 그냥 놀고 싶은데


중요한 것은 같이 노는 것이지, 때리는 것이 아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는 대사가 가장 어린 '윤이'의 입에서 나온다. 그 상황에서 윤이는 아이들이고 선은 우리들이다.


감독은 아이들의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다룬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표정과 대사를 통해 표현된다. 혼란스러운 마음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해 보여준다.

(※핸드헬드 : 카메라 혹은 조명 장치 등을 손으로 드는 것. 특히 카메라를 트라이포드(삼각대)에 장착하지 않고 들거나 어깨에 메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


아이들의 세계에 갈 일어난다. 영화 속에는 그 갈등을 도와줄 수 있는 괜찮은 어른들이 주변에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에게 기대지 않는다. 그들만의 문제이고 그들의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오롯이 그들만의 세상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들은 이 영화를 보나면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가 아이들에게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인간관계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사을 만나면서 겪는 갈등은 어린 아이들이라서 생기는 일이 아니고, 어른이라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겪는 '관계의 어려움'은
 우리들이 겪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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