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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Dec 24. 2019

'클리셰 안여(安輿)'에 올라탄 최민식과 한석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리뷰, 2019년 12월 개봉

[영화앞담화]는 깊이 있게 파고드는 [영화뒷담화]와 달리 스포일러 없이 간편하게 읽는 영화 리뷰입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포스터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세종실록」에 적힌 '안여사건'을 토대로 만든 팩션(faction)이다. 안여사건은 세종이 탄 가마 안여(安輿)가 부서진 사건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안여를 제작한 대호군(大護軍) 장영실은 감독을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의금부에 투옥되어 장형(杖刑)을 받은 뒤 파직되었다. 장영실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천문>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을 흔히 '멜로 장인'이라고 부른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행복>(2007), <호우시절>(2009) 등의 작품을 만들면서 한국 멜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멜로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영화 <천문>은 세종대왕(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의 멜로드라마다. 역사왜곡 논란은 차치하자. 연출만 보면 허 감독은 자신이 해왔던 멜로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한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가 각별했음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멜로 연출 방식이 쓰이는데, 기시감이 든다. 기존의 클리셰를 뒤범벅하니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창호지를 뚫어 별을 만들거나 갑자기 바닥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클리셰(Cliché) :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진부한 장면이나 판에 박힌 대화, 상투적 줄거리, 전형적인 수법이나 표현을 뜻하는 용어)


배우들은 잘못이 없다. 억지스러운 각본과 연출의 피해자일 뿐, 최민식과 한석규는 제 몫을 해낸다. 다만 두 배우가 그동안 보여줬던 연기, 그 이상의 것은 없다. 감초 역할의 임원희, 윤제문, 김원해는 어떠한가. <노팅힐>의 스파이크(리스 이판 분), <건축학개론>의 납득이(조정석 분)를 세 명으로 나눠놓은 캐릭터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멜로 클리셰 덩어리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멜로물로 탈바꿈한 시도는 박수 쳐줄 만하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결과적으로 클리셰 안여(安輿)에 올라탄 셈이 됐다. 과연 이 안여가 무너진 뒤에는 누가 장형을 받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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