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쓰리 빌보드> 리뷰(결말, 해석), 코로나19 사태와의 관계
이건 다 네 탓이야
친구가 짜증을 냈다. 예상보다 오랜 시간 걸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팠겠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던 중이었다. 강을 건너 부다왕궁을 구경하러 가기 위해서 걷고 있었다. 거의 1시간 가까이 걸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친구는 택시를 타자고 했지만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 설득하고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멀었다. 둘 다 초행길이라 예상할 수 없던 상황이다. '네 탓’은 걷자고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질문이었다.
너도 알겠다고 했잖아
파국이다. 서로를 탓하기 시작하면 함께 여행을 할 수가 없다. 여행이란 언제나 낯선 것과 만나는 일인데, 예상한 범위 내의 낯선 것이 아니라고 서로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이라니.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불안해진 것에 대해 탓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을 말했다. 친구에게 "아까 숙소 프런트 직원이 가깝다고 했는데.."라고 말하는 순간 짜증의 화살 방향이 바뀌었다. 맞다. 이 모든 책임은 숙소 직원 때문이다.
나쁜 상황을 극복하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이다. 적을 만들면 복잡한 관계와 상황은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숙소 직원을 적으로 만드는 순간 여행은 다시 이어졌다. 여행을 위해 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 <쓰리 빌보드>는 적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세 개의 광고판(three billboard)이 세워지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각자 자신만의 적을 설정하고 책임의 화살을 겨눈다. 그런데 그 화살들이 이따금씩 빗나가기 시작한다. 과연 누구에게 어떤 적이 필요한 것인가.
영화 <쓰리 빌보드>(원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는 '현대판 셰익스피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각본을 집필해온 마틴 맥도나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2018년 제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영화로 밀드레드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여우주연상을, 딕슨 역의 샘 록웰은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 등 4관왕, 영국 아카데미 5관왕 등 그 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딸 안젤라를 참혹하게 살해된 범인이 수개월째 잡히지 않자 마을 외곽에 위치한 광고판 3개에 3줄의 문장을 게시한다.
도발적인 문구는 관할 경찰서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광고판에 이름이 명시된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는 부하 딕슨(샘 록웰)과 함께 광고회사와 밀드레드를 찾아가 빌보드를 내릴 것을 회유한다. 그러나 밀드레드는 물러서지 않고 경찰의 수사를 거듭 촉구한다.
광고판이 알려지면서 무능한 경찰들을 비난하는 시선과 함께 조용한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든 밀드레드를 비난하는 시선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죽으면서 강간당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은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경찰서장 윌러비?
나는 강간당하고 말 거야!
아무도 널 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봤지? 나는 백인도 때려
진짜 적은 누구인가
우리는 모두 적이 아니에요,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