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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May 26. 2020

'사냥의 시간'과 '1917'은 다른가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 리뷰(해석, 결말)

영화 <1917>  스틸컷
'1917'도 내러티브 없이
그냥 목적지를 향해
도착하고 끝인 영화다.


영화 <사냥의 시간>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의 말이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냥의 시간>의 내러티브가 빈약하다는 지적에 대한 답이다. 감독이 언급한 영화 <1917>은 <아메리칸 뷰티>, <007 스카이폴>, <007 스펙터> 등을 연출한 샘 맨데스 감독의 작품으로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작품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7관왕 등 2019년 한 해 동안 온갖 영화제를 휩쓴 작품이다.


앞뒤 맥락을 잘라서 보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발언을 다시 보자.


"한국영화는 너무 내러티브 중심이어서 <사냥의 시간> 같은 영화를 택했다. 해외에선 워낙 그런 영화가 많다. 얼마 전 개봉한 <1917>도 내러티브 없이 그냥 목적지를 향해 도착하고 끝인 영화다. 한국에서도 해보고 싶어 도전했지만, 한국영화는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 같다"  -인터뷰 中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정말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감독의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최근 한국영화들이 지나치게 내러티브 중심으로 흘러가 천편일률적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1917>에 내러티브가 없고, <사냥의 시간>이 이와 유사하다는 말은 다시 짚어봐야 한다.


영화 <사냥의 시간> 스틸컷


<사냥의 시간> 줄거리

근미래의 어느 시점, 또 한 번의 금융위기로 길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은 데모와 폭동을 일으킨다. 길거리는 노숙자들로 가득하다. 총기와 마약 거래가 자유롭게 이뤄지고, 화폐 가치가 폭락했다.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나온 준석(이제훈)은 몇 년 만에 거대한 할렘가로 변한 서울에서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

준석은 지옥 같은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친구인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상수(박정민)를 설득해 불법 도박장의 달러를 훔칠 계획을 세운다. 순조롭게 돈을 훔치지만 꿈꾸는 지상낙원으로 출발하기 전 킬러 한(박해수)이 이들을 쫓기 시작한다.
영화 <1917> 스틸컷
<1917> 줄거리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일촉즉발 전시 상황에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에게 하나의 미션이 주어진다. 두 사람은 독일군에 의해 모든 통신 수단이 두절된 상황에서 전방에 있는 영국군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공격 중지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속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을 뚫고 1,600여 명의 아군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영화 <1917> 촬영 메이킹

<1917>은 플롯이 단순해 내러티브가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러한 점에서 <사냥의 시간>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다르다. <1917>의 플롯이 단순한 점은 관객들을 내러티브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다. 해방된 관객들은 전쟁터에 떨어진 마냥 숨막히는 살생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롱 테이크'*와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원 컨티뉴어스 쇼트'**로 그 재미극대화된다. 이러한 효과를 위해 이야기 구조를 단순하게 만든 것이다. 복잡하고 극적인 내러티브 없이도 충분한 긴장감과 몰입도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롱 테이크(long take) : 일반적인 길이의 숏 보다 훨씬 길게, 편집 없이 숏을 찍는 기법.

**원 컨티뉴어스 쇼트(one continuous shot): 롱테이크와 달리 장면을 나누어 찍은 후 이를 다시 이어 붙여 한 장면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


반면 <사냥의 시간>은 내러티브를 단순하게 한답시고 개연성까지 버렸다. 이는 몰입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왜 준석(이제훈)은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범죄를 계획하는가,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은 기훈(최우식)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준석의 계획에 동참하는가, 이토록 어설픈 강도질에 왜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가, 도박장에 있던 돈을 훔쳐놓고 상수(박정민)는 왜 다시 도박장에 출근하는가, 한(박해수)은 왜 그러는가 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달아 벌어진다.


물론 감독의 의도대로라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사냥의 시간>은 이야기가 아닌 이미지와 상징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는 전부 영상으로 구현된 듯 보인다. 이야기보다 이미지로 구현된 세계관과 그 세계관 속 인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 스틸컷

먼저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을 깔고, 그 위에 준석, 상수, 장호, 기훈이라는 각기 다른 캐릭터들을 조합해 올려놓았다. 준석은 불안한 희망을 꿈꾸는 청춘을, 상수는 묵묵히 버티는 청춘을, 장호는 없어도 친구들이 있기에 견디는 청춘을, 기훈은 아무리 가난해도 가족과 친구란 끈을 버릴 수 없는 청춘을 형상화한 캐릭터들을 조합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하비에르 바르뎀을 연상케 하는 사냥꾼 한은 희망이 없는 도시에서 잔인한 쾌락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개연성은 없다. 상징적 이미지들이 각자 논다. '사냥꾼 한이 강도질을 한 청년들을 쫓는다'는 이 단순한 내러티브조차도 끌고 나가지 못한다. 결국 청춘을 응원하려던 감독의 메시지는 무게감을 잃고 사라졌다. <1917>이 단순한 내러티브에도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원 컨티뉴어스 쇼트'라는 기술적인 것 외에도 1차 세계대전이라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냥의 시간>은 가상의 세계다. 그런데 그 세계가 설득력이 없다. 그 위에 올라간 인물들의 행위마저 개연성이 없는데 관객들이 어찌 그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영화 <사냥의 시간> 스틸컷

물론 영화 전체가 엉망인 것은 아니다. 기존에 한국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신선한 세계관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이를 영상을 통해 충실히 재현해낸 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프닝 30분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새빨간 비주얼을 메인 컬러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어둡고 칙칙한 공기 역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기운과는 잘 어울린다. 낯선 공기와 어우러지는 '힙(HIP)'한 음악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캐스팅도 최상이다.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의 연기력은 예상한 것처럼 나무랄 데가 없고, 박해수는 존재감만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시청각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드니까
내러티브에 익숙하신 분들에겐
낯설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감독은 혹평하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낯설어서 그렇다고. <사냥의 시간>이 '시청각 중심'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미장센, 인물의 성격 및 행동, 대사, 그 외 각종 설정 등은 <사냥의 시간> 속 세계관을 나타내고자 가공한 것들이다.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그 세계의 성격을 보여주고,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는 청년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현실의 청년들을 응원하려는 의도였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묻고 싶다.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에 <사냥의 시간>은 충분한 영화인가. 감독의 말대로 낯설지 않다면 이 영화는 과연 재밌을까.




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
영화 <1917>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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