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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난은 신 밖에 모른다.

영화 <단지세상의끝> 리뷰(해석, 결말)

by 글쓰는 백구
이해는 못 해,
하지만 널 사랑해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는자신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말하기 위해 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루이의 어머니(나탈리 베이)는돌아온 아들을 위해 정성껏 요리를 하고, 어릴 적 헤어져 오빠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여동생 쉬잔(레아 세이두)은 오빠에 대한 기대감으로 예쁘게 치장을 한다. 동생을 만난 형 앙투안(뱅상 카셀)은 표정이 내내 못마땅하다. 형수 카트린(마리옹 꼬띠아르)은 루이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다.

루이의 고백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족들은 일방적인 분노와 원망을 쏟아낸다.
자비에 돌란 감독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거장, 자비에 돌란 감독의 여섯 번째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은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에큐메니컬상(Prize of the ecumenical Jury) 2관왕을 거머쥐었다. 가족들은 서로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모진 말과 행동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이와 같은 현대 사회에서의 가족의 모습으로 소통의 부재, 인간관계의 애증을 그려낸다. 전작 <마미>와 <아이 킬드 마더>의 연장선에 있는 듯 보이지만, 그보다 더 확장된 세계를 그려낸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은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프랑스 극작가 장 뤽 라가르스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에 발표했다.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유명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첫 장면에서는 그의 내레이션과 함께 가족에게 향하는 비행기 안에 그를 보여준다. 내레이션과 생각에 잠긴 그의 모습이 나오던 중 갑자기 뒤에 앉은 아이가 그의 눈을 가린다.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가 뜻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 암시한다.


12년 만에 만난 가족들은 루이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쉴 새 없이 내뱉는다. 그것은 환영하는 것도 아니고 적대하는 것도 아니다. 루이로 인해 가족들은 감정적인 변화에 쉽싸인다. 이를 눈치챈 형 앙트안은 동생에 대한 원망과 열등감, 피해의식까지 뒤섞여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낸다. 루이와 가족들 간의 대화는 갈등으로 치닫고 루이가 원래 하려고 했던 말과 가족을 찾아온 목적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자신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리겠다는 것에서 루이가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잘 나가는 작가지만, 12년 동안 한 번도 가족을 찾아오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배려라는 생각으로 찾아갔지만, 그동안 가족의 마음을 살피지 않은 이기적인 생활을 해왔다. 오랜 세월 축적된 감정의 퇴적층을 무시한 것이다. 죽음이라는 인생의 가장 커다란 이벤트를 알리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나쳐버린 소통이었다. 차라리 감기에 걸렸다고, 날씨가 춥다고 전화 한 통을 하는 것이 그들을 더 가깝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집이란 항구가 아니야


거친 대화 끝에 집을 나서는 루이 뒷모습에 ‘집이란 항구가 아니야’라는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가족을 만나고 나온 루이의 마음을 대변한다. 지금 우리에게 ‘고향을 찾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자비에 돌란 감독과 배우, 스텝들


‘언어’가 나에게는
영화의 주요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은 신선한 기법과 과도한 대사량으로 평단의 비판을 받았다. 기존의 영화가 보여주던 풀샷, 바스트샷, 클로즈업*으로 이어지는 설명적인 카메라 구도는 이 영화에 없다. 배우들의 전신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강박적인 클로즈업으로 내내 갑갑하다. 클로즈업에 끊임없이 내뱉는 대사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누구에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으며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말의 내용이나 듣는 사람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에 집중하길 바라는 의도로 비친다.


감독은 원작자인 ‘장 뤽 라가르스’의 언어를 그대로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감독은 클로즈업을 통해서 핵심에 다가가고, 밀담의 장면에 가까이 닿음으로 관객이 루이에게 가까워지길 바랬다.


(*클로즈업(close-up) : 근접 촬영, 등장하는 배경이나 인물의 일부를 화면에 크게 나타내는 일)

영화가 끝나면, 문득 떠오른다. 루이는 어디가 아픈 것인지, 그의 12년은 문제없이 평탄했는지 관객 또한 묻지 않았다. 루이가 가족을 보며 깨달은 것을 관객은 루이를 보며 느낀다. 우리는 그가 언제 고백을 할지만 기다리다 가족 간의 대화에 지쳐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대화 속에 섞인 그들의 감정에 몰입하고 결국 그 집에서 나오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지도 모른다.


결국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루이는 집을 나서며 다시는 이렇게 오래 걸려서 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거짓말을 한다. 그가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으로. 그리고 엔딩곡이 흐른다.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내 고난은 신 밖에 모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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