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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Dec 14. 2017

<강철비 Steel Rain>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영화의 정치화다.

영화 '강철비'
시대를 반영한 영화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국내 영화계에서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작품은 더 그렇다. 간첩과 육군 대위의 사랑을 그린 ‘운명의 손’(1953), 6.25 전쟁 이후 사회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오발탄’(1961) 등 90년대 이전에 개봉한 영화들은 북한을 그저 악으로만 표현했다. 전쟁 피해로 여전히 어렵던 시절, 국가가 반공교육을 하던 시기였다. 90년대 들어서 획기적인 영화 한 편이 등장한다. ‘쉬리’(1999)는 충격적인 영화였다. 남북한 관계와 더불어 로맨스, 첩보물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완성도, 빠른 호흡 및 긴박한 전개 등 잘 만든 상업영화로 평가됐다. 동시에 북한군을 악이 아닌 사람으로 그리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이후 영화들은 남북 화해에 초점이 맞춰진 한반도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간다. 바로 다음 해 ‘공동경비구역 JSA’, 2005년 ‘웰컴 투 동막골’ 등이 그렇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이 소재는 일종의 ‘클리셰’*로 작용한다. 공식처럼 비슷한 영화가 줄줄이 만들어졌다. ‘의형제’(2010), ‘간첩’(2012), ‘베를린’(2012), ‘용의자’(2013),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공조’(2017). 이 영화들은 모두 남한에 투입된 북한 공작원들을 다루고 있다. 대중적인 흥행과는 별개로 ‘뻔한 스토리’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강철비’는 이 지겨운 소재를 담은 영화다. ‘변호인’으로 천만 관객을 모았던 양우석 감독이 연출했다. ‘변호인’에서 국가를 향해 거침없이 헌법 제1조를 외치는 장면을 만든 감독이 이번엔 한반도 핵전쟁 위기를 정면으로 다룬다. 같은 소재의 영화들과는 다른 부분이다. 이전에는 남북관계를 설정으로만 채택했다. 하지만 ‘강철비’는 가장 민감한 현안을 그대로 끌고 들어가 감독만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클리셰(cliché) : 영화, 노래, 소설 등의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나 이야기의 흐름)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 최정예 요원이었지만 권력으로부터 한 차례 밀려났던 '엄철우'(정우성)는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온다. 그 사이 북한은 대한민국과 미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남한은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때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북한 1호가 남한으로 내려왔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강철비’는 양우석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감독은 2011년 완결된 웹툰 ‘스틸레인’과 올해 10월부터 연재 중인 웹툰 ‘강철비: 스틸레인 2’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스틸레인’은 북한의 권력 1호 김정일이 죽은 이후를 다루고 있고, ‘강철비: 스틸레인2’는 영화와 같은 설정이다. ‘스틸레인’ 이후 설정을 바꾼 이유는 원작을 쓴 이후 6년 간 정치적 상황이 여러 복잡한 요소들로 인해 변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달라진 한반도 정세를 영화에 담고자 했다.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세가 많이 바뀌어서
영화엔 웹툰과 다른 캐릭터와
상황이 반영됐다.


그중 하나가 북한 핵 문제다. 북한 핵 실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양극단의 다툼이 일어난다. 우리 사회에는 북한을 대하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논리가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북한을 옹호하면 종북 좌빨,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면 수구꼴통이라고 비난하는 식이다. 이같이 타협하기 어려운 입장이 영화에 등장한다. 대통령(김의성)과 차기 대통령(이경영)의 논쟁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은 미국과 공조해 북한을 겨냥한 선제 핵폭을 주장하고, 차기 대통령은 반대한다. 다음은 영화 속 대사다.


- 대통령 : 이제 우리 좀 솔직해집시다. 북한에서 쿠데타까지 일어났어요. 우리가 지금 공격해도 쟤들 절대로반격 못 해.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제거하는 데 이렇게 좋은 명분과 기회가 있었어요?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 대한민국에 죄를 짓는 거야. 형. 나 이 자리 물러나기 전에 대한민국과 차기 대통령에게 정말 멋진 선물 하나 하게 해줘.


- 차기 대통령 : 지금 대한민국 경제성장률, 인구성장률 다 뒷걸음질치고 있어. 쉽게 이야기해줘?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고. 원래 하나였던 민족이 다시 하나로 통일돼야 된다는 당위가 이해가 안 되면은 이익의 눈으로라도 통일을 봐봐. 난 절대 선제 핵폭에 동의 못 해.

(차기 대통령이 빌리 브란트 서독일 전 총리의 저를 읽는 장면은 그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미국의 입장도 나온다. 미 국무장관 마이클 돕스(론 도나치)는 우리나라의 핵 선제공격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쟁비용 3천억 달러 중 2천5백억 달러를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각자 다른 입장을 영화에 등장한다. 영화에서 부각되진 않았지만 북한 내부의 매파(강경파)와 비둘기파(온건파)까지도 묘사된다. 각 입장을 들을 때마다 실제 인물들이 떠오른다. 감독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으려 했다”라고 밝혔다.



이같이 뉴스 같은 내용만 담겼다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거다. 영화는 중요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음식과 음악, 그리고 가족애 등의 유머코드가 담긴 이음새로 재미를 준다. 남한의 곽철우는 ‘햄버거’를 먹으며 첫 등장한다. 엄철우를 붙잡아 조사할 때 ‘햄버거’를 준다. 엄철우는 북한에서 ‘깽깨이국수’를 먹고 출발했고, 곽철우와 함께 하는 첫 식사에서도 ‘깽깨이국수’라 불리는 잔치국수를 먹는다. 딱딱한 대화가 아닌 상징적인 음식을 통해 두 사람 관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첫 장면이 모두 가족과 함께인 점도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다. 가수 지드래곤(GD)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점도 그렇다. 이 요소들은 관계적으론 이들이 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동포임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는 장면들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욕심에 캐릭터들을 기능적으로 썼다는 점, 화두는 던졌지만 매듭짓지 못한 어설픈 결말 등으로 인해 영화 속 이야기보다 현실의 핵 문제만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치적인 부분을 가져왔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한 부분들을 드라마로 가득 채운 점은 우리나라 상업영화의 한계인 걸까. 정치영화에 대해 '네 멋대로 해라'를 연출한 장 뤽 고다르(현대 영화의 기점인 누벨바그 운동의 대표주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정치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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