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여행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아마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지만 여행을 왜 하냐고 물어보면 비교적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일탈. 평소와 다른 음식을 먹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안 하던 것들을 하며 보내는 하루. 일상을 쥐던 손을 펴 떠나보내고 매일 새로운 하루를 손에 넣는다. 일상처럼 관성적인 시간을 지울수록 좀 더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저께 친구에게 했던 대답이 다시 떠올랐다. "인도 여행은 빡쎄니까 지금 미리 쉬어놔야 돼". 빡쎄다는 표현을 풀어보자면 인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긴장을 놓기 힘든 나라다. 한국과 생활양식이 너무나 다르고 로컬 사람들은 여행자에게 호시탐탐 사기를 치려 든다. 강심장으로 해야 하는 여행지 이기에 특이한 여행자가 모인다. 여행지가 '빡셀수록' 좋은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야 긴장을 놓기 힘들고, 긴장을 놓지 않는 건 현재에 집중하는 거고, 새로운 현재에 집중할수록 일상을 잊는 거니까. 여행의 의미를 일탈로 둔다면 인도만큼 좋은 여행지가 없는 거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기분이었으면서 이렇게 하루 만에 인도 예찬을 하자니 머쓱하지만, 어이없게도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졌다. 아침 산책을 하고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자꾸 미소가 지어졌다. 환전소를 찾아다니고 심카드를 사고 기차역에서 다음 여행지로 가는 티켓을 예약하면서 묘한 쾌감이 생겼다. 20루피를 주고받은 으깬 사모사 한 접시에 행복해졌다. 한 번도 안 쓴 배낭 커버를 잃어버리고 휴지를 사기 당해 잘못 샀지만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다.
세상 모든 게 그럴 테지만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다. 사람은 어두운 면을 먼저 보고 크게 보는 능력이 있어 어제 그런 기분을 가졌나 보다. 직접 이 곳에 와서 사물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니 이해가 가고 다시 인도가 괜찮아졌다. 인도만 한 곳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