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향하는 기차에서
멋진 해변을 가진 인도 휴양지. 배낭 여행자의 블랙홀. 고아로 가는 기차. 물을 마시고 지나가는 상인으로부터 커틀릿을 사 먹고 앞에 앉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남아 아이폰을 켜고 인터넷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도 결국은 지루해서 시간을 보니 출발한 지 아직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도착까지 열 한 시간이 남은 거다. '하는 수 없이' 책을 꺼냈다. 이번 경량 여행 7kg 조건 안에서 특별히 선정된 3권 책 중 유일하게 에세이인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 방랑'. 출판한 지 삼십 년이 넘은 책으로 일본에서는 아직도 인도 여행자 사이에서 곧잘 읽힌다는 이름난 책이다. 나도 이 책을 산 지 몇 년이 지났고 물론 몇 번이고 끝까지 읽었지만 인도에서 한 번 더 읽고 싶어 책장에서 꺼내 가방에 담아 온 터였다. 마침 읽은 지 오래되어 내용이 잘 기억 안나기도 하고.
"오늘 같아".
전에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점인데, 수십 페이지를 눈으로 보고 넘기다가 연거푸 담긴 그의 사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인도 여행을 하면서 이 책을 읽은 건 처음이라서였을까. 찍은 지 삼십 년이 넘은 사진이지만 오늘 본 것처럼 똑같은 사람들의 옷차림, 그들의 표정, 그리고 간판 타이포그래피.
약간 낡은 것을 빼고는 지금과 별다른 것이 없다. 발전이 멈춰버린 도시의 모습.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걸까. 책의 글과 사진이 좀 더 깊숙하게 다가온다. 그 와중에 객차 안에서 구걸을 하는 할머니가 천천히 나에게 걸어와 돈을 달라는 제스처를 했다. 언제부터 구걸을 하셨을까. 삼, 사십 년 전에도 하셨을지 몰라. 어쩌면 후지와라는 이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보셨을 수도 있겠다. 구걸하는 할머니 앞에서 어떤 의사표현도 하지 않고 그저 이런 상념에 젖고 있자니 할머니는 본인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듯 청바지가 찢어져 터져 나온 내 무릎을 본인의 손가락으로 긁어 불만을 표하셨다.
손톱 촉감이 미묘했다.
어쩌면 삼십 년 전 인도를 만지는 기분인지도.
반사적으로 할머니의 눈을 올려다보았는데,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