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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Mar 29. 2018

19. 릭샤왈라

마두라이

이 릭샤왈라(탈 것 운전사)를 만난 건 해가 지고 관람한 궁전의 라이트 쇼가 끝난 뒤였다. 호텔로 돌아갈 생각에 합승 오토릭샤(오토바이 택시)에 끼여 타려고 지나가는 릭샤마다 행선지를 물어봤는데 번번이 다른 길로 가는 오토릭샤만 잡히고 있었다. 그때 몸집이 작고 까만 이 늙은이가 어두움 속에서 불쑥 나타난 거였다. 그는 두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는 모습을 하며 다가와 뭐라고 말을 전하려는 듯했다. 내 자전거로 데려다줄게, 하는 말로 들려 "호텔 첸투르?"라고 물으니 대번에 알았다고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자신감 있게 끄덕인 후 나를 자신의 자전거로 안내했다.

사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사이클 릭샤(자전거 택시)는 타지 않으려고 했다. 4년 전 인도 여행에서 느낀 것인데 탈 때 그 기분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이클 릭샤왈라는 할아버지뻘의 늙은이인데 기어 없는 자전거를 힘겹게 끌고 오르막이라도 오를 때면 페달을 밟을 때마다 느낄 그의 고통이 내가 앉은 자리 엉덩이까지 저리게 전해지는 듯했다. 그 느낌은 곧 죄책감과 후회로 바뀌었다. 길이라도 막히자면 걷는 것보다 딱히 속도가 빠른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왜 사이클 릭샤를 타는지, 그 근본적인 질문에 닿는다. '내가 이 사람을 부려먹고 있다'는 것. 그 이상의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결국 사이클 릭샤는 나에게 '탈 이유가 없는 교통수단'이었던 거다.

그런 내가 왜 그 릭샤왈라에게 이끌려갔는지 모르겠다. 그의 확신에 찬 눈빛 때문이었는지, 어두운 밤 귀갓길의 부담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내 가치관이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의 릭샤 뒷자리에 앉으며, 어쨌든 이 릭샤왈라의 지속 가능한 삶에 일조하는 거 아닌가 하는 핑계 섞인 논리를 만들어보았다. 택시나 오토릭샤에 비해 매연을 전혀 만들지 않는 교통수단이라는 전 지구적인 거창한 이유까지는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희석된 예전 감정을 덮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릭샤왈라는 가벼운 신음소리와 함께 왼쪽 페달을 눌러 밟았다. 그의 왼발이 내려가면서 바퀴가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고, 4년 전에 느낀 죄책감도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싫었다. 그는 천천히, 오토릭샤와 자동차를 앞으로 보내며, 본인만의 페이스로 나를 운반하기 시작했다. 느린 자전거로 도로에 뛰어들자면 민폐가 되기 십상인데 지혜롭게도 그는 도로의 지휘관이 되는 쪽을 선택한 것 같았다. 그의 두 손은 핸들을 잡을 때가 거의 없었는데,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끼어드는 릭샤를 보냈다가, 세웠다가, 지나가는 행인을 위해 가끔 옆에 가는 자동차를 멈춰 세우기도 하는 등 지옥 같은 인도 길거리의 교통을 두 손으로 통제하며 도로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몸으로 설명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그의 자전거를 느릿느릿 전진시키고 있었다.

이 할아버지의 꿈은 뭘까, 생각해본다. 오토릭샤를 가지는 것. 길이 뻥 뚫린 도로에서 페달을 밟는 것. 도로의 방지턱이 모두 평평해지는 것. 손님의 몸무게가 5킬로그램으로 줄어드는 것. 또 뭐가 있을까,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꺼내보았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에서부터 피하고 싶은 이유에서 꺼낸 상상들이다. 노인에게 이렇게 중노동을 시키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벗겨진 노인의 윗머리에 이슬이 낀 것처럼 땀이 맺히고 있었다. 아직 중간 즈음밖에 오지 못했지만 여기서 내려 백 루피를 던지듯 쥐어주며 샛길로 뛰어 도망가는 상상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지나치는 행인들은 나를 보고 영어나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며 웃음을 지었지만 이번에는 그게 호기심 섞인 인사가 아닌 조롱처럼 느껴졌다. 릭샤 위에 올라타고 고개를 뻣뻣이 든 관광객을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는 사람들, 그런 나를 힘겹게 끌어 나르는 릭샤왈라.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졌다.

어쩌면 릭샤왈라도 그저 하나의 직업인데 내가 괜히 과하게 해석하고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문화의 차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랬고, 이윽고 저 먼 길 끝에 "호텔 첸투르" 사인이 작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길이 막혀 잠시 멈춘 틈을 타 릭샤에서 서둘러 내리고 왈라에게 지폐를 쥐어주며 다 왔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맥락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고, 받아 든 백 루피 지폐를 손에 들고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큰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고개만 옆으로 살랑살랑 흔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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