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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Apr 04. 2018

20. 오로빌

오로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소비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 그 능력을 필요한 곳에 전달해주는 공간을 인터넷에 만들고 싶다. 필요한 곳이 병원이나 컨테이너 박스일 수도 있지만 문화, 예술, 사회, 정치문제 같은 프로젝트에도 공익을 위해서라면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은 단지 아프고 불쌍한 사람을 돕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작하는 팀의 이름을 '오로빌'이라고 지었다. 인도 오로빌에서는 사람들이 본인의 능력과 재능을 함께 사는 사회 구성원을 돕기 위해 사용하고 또 도움받으며 살아간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목적은 영리나 등가교환이 아니라 그저 선한 의지를 가진 화합이다. 인터넷에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곡절 끝에 들어간 회사에서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뜻밖의 상황으로 엎어질 무렵, 우연한 기회에 사회공헌 부서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팀을 옮긴 후, 이 팀에서 일을 하려는 각오랄까, 기대감을 담아 이런 글을 썼다. 그리고 반년 뒤에 이 철학과 생각을 담은 사회공헌 플랫폼을 인터넷 세상에 내놓았다. 위에 쓴 의도만큼 이상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지금도 이 도구를 통해 기부나 인력을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고, 앞으로 더 다양한 형태의 나눔이 이뤄지도록 지금도 그 기능이 조금씩 견고해지고 있다.


나는 최근 몇 년 간 일을 하며 머릿속 지침으로 삼았던 그 오로빌에 지금 와 있다. 4년 전 인도를 찾았을 때 막연히 멀다는 생각에 포기했던 곳. 폰디체리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달려와 벌써 나흘째 체류 중인데, 책이나 기사, 글로 읽은 대로 이 곳이 그렇게 굴러가고 있는지 굉장히 궁금했다. 그래서 오로빌 한가운데 숙소를 잡아 자리를 텄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곳을 엿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통해 짧게나마 오로빌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짧은 시간을 보내며 내가 본 건 무엇이었을까. 뻔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영리 사회의 대안이라고 느꼈던 오로빌이지만 사람들은 'auro card'라는 것을 만들어 가게에서 음식이나 물건을 구매한다. 현금을 내지 않을 뿐이지 음료와 음식엔 인도 루피의 단위로 숫자 가격이 매겨져 있다. 오로빌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데 수천 명의 오로빌리언이 필요하다지만 날씨가 더운 여름과 장마에는 오로빌에 수백 명 밖에 남아있지 않는다. 떠난 그들은 더위와 비를 피해서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사랑과 책임은 어디로 간 걸까. 오로빌 안에서 하는 힘쓰고 궂은일은 오로빌리언이 아닌 인도인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인도인 스텝이 식당에서 차를 한 잔 따라 리셉션으로 가져와 거기에서 일하는 오로빌리언의 테이블에 놓고 가는 모습을 보며 적잖케 충격을 받았다. 여긴 오로빌이잖아. 그렇게 외치던 Human Unity는 어떻게 된 거지. 유치원 앞에 지나가는 아이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걷고 있었다. 그런데 꼭 피부가 어두운 아이와 밝은 아이에게 서로 손을 잡고 걷게 하는 걸 보았는데 그렇게 열 쌍이 넘는 행진을 보며 굉장히 인위적으로 보여 마치 평양 투어 여행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오로빌에서 실망만 하고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며칠 머물고 가는 곳에 어떤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거고, 이상을 가지고 실험 중인 곳을 비판만 하기보다는 응원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실험이 계속되었으면 하고 더 견고하게 이상을 향하는 오로빌이 되면 좋겠다. 언젠가 오로빌리언이 되었으면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마트리만디르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지내면서, 지나가는 오로빌리언을 보고 저 자리에 내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직까지는 그 자리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대안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대안이 이 곳이 되었으면 하고 사회 안에서 체계에 힘들어할 때 떠올릴 곳이 여전히 이 곳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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