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디체리
어떤 아침, 지나가는 액세서리 파는 상인이 '모닝 비즈니스'를 위해 나에게 위해 다가왔다. 물건을 살 마음이 없더라도 적절하게 대답에 응하며 완곡하게 거절을 하는 게 심심한 시간을 달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서, 끊임없이 대답하다 보니 그는 내가 그의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한 듯 선물로 목걸이를 하나 주고 떠났다. 내일 다시 만나면 꼭 값나가는 액세서리 하나를 사야 한다는 부탁을 덧붙히며.
손바닥에 놓인 빨간 목걸이를 보면서 그의 하루를 떠올렸다. 그리고, 어렵게 사는구나, 생각했다. 해가 질 때까지 무거운 액세서리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동네를 서성거리겠지. 그런데 어쩌면 모양만 다르지 서울의 나, 아니 우리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진 생각에 서울 생활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와 다른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다. 저 상인이 지닌 여유였다. 그는 돈이 없지만 여유 한 조각을 내 손에 올려놓고 갔다. 무언가를 팔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여유로운 대화로 짧은 한 때를 함께 나누었다.
친구가 하는 일을 통해 사회 안 쳇바퀴를 굴리던 내 일상을 되돌아본다. 사업하는 친구의 사업 아이템은 "협업도구"이다. 업무를 하며 낭비되는 시간을 그가 만든 도구를 통해 아끼고, 그렇게 얻은 시간을 좋은 곳에 쓰자는 거다. 솔깃하다. 하지만 9시부터 6시, 또는 10시부터 7시 안에서 낭비되던 시간을 절약하면 그렇게 얻은 시간을 어떻게 쓰게 될까? 아마 다음에 해야 할 일을 당겨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네 삶이 그렇게 된 것 같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기술이 발전될수록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또 일을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니라, 그냥 '더 일을 많이 하는 우리'가 되었다. 하루를 더욱 촘촘하게 쪼개어 여유 없이 일하는 우리가 된 거다.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당장 오늘 달리지 않으면 내일 주저앉는 스타트업에게 배부른 소리일 수는 있지만, 언제까지 제한된 열정을 시간과 바꾸며 일할 수 있을까.
여행자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 생활을 한 달 가까이하면서, 평소처럼 일을 하거나, 일 생각을 하거나, 일에 필요한 것을 생각하거나 공부하는 시간이 없어지니 그 시간에 찾아온 것들은 일출 보기, 일몰 보기, 책 읽기, 상상하기,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말 걸기 같은 것들로 채우게 되었다. 요즈음 지내면서 심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마 일하며 쓰는 시간이 없어서겠지. 예전에 일 년 넘게 긴 여행을 하다가도 그만두었던 이유가 심심하고, 일을 하고 싶어서였던 거니까. 하지만 한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에는 또 촘촘히 시간을 쪼개어 일하다 보니 소비만 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지금처럼 평생 살기는 지루해서 어려울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에 열정을 쏟으면서도 내가 채워질 수 있는 지금 같은 시간이 하루에 공존하는 삶을 살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work and life balance'라는 게 그런 거겠지만 말이야 쉽지 사회 안에 있자면 그런 걸 조율하지가 쉽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영리 사회 안에서의 유토피아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사회 안에 있겠다는 결심 아래에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