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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Apr 04. 2018

23. 버닝가트

바라나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집요한 삐끼의 추격에 적당히 응하다 떨쳐내고 혼자가 되니 어느새 숙소와 꽤 멀어진 곳까지 걸어왔다. 왔던 길을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막막했다. 조금 덥겠지만 가트(강가) 쪽 큰길로 걸어가는 게 빠를 것 같아 시장 아래로 걷기 시작했다. 보폭을 넓게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는데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곳마다 AK로 보이는 나무 소총을 옆에 끼고 두 명씩 쌍을 지어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경찰인지 군인인지 모를 보초 서는 사람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이번에는 뒤에서 소리를 치며 무리 지어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길가로 뛰듯 비켜섰다. 두 줄로 서서 뛰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연스레 어깨 위로 올린 물건에 눈이 갔다. 시체구나, 그제야 내가 어디로 걷는지 알게 되었다.

열 명 정도의 상두꾼들은 화려한 천으로 포장된 시체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트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노동요 같은 것을 부르면서 내려가는데 주술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버닝 가트였구나. 사실 4년 전 바라나시에 왔을 때도 이 버닝가트라 불리는 화장터에 가 본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저 떨렸다는 기억 외에는 어떤 느낌도 마음에 남아있지 않았고, 이내 빈 마음공간은 호기심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점점 짧아지는 보폭으로 걸으면서 가트에 가까워질수록 갖가지 생각이 피어올랐다.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시체의 얼굴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진을 몰래 찍어도 될까. 소똥을 밟을까봐 바닥을 보고 조심스레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제 가트에 도착한 거였다.

해가 중천에 뜬 더운 시간이었지만 버닝가트에 있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해 보였다. 민첩한 모습으로 시체를 운반하고 내려놓는 상두꾼들. 커다란 나무 장작을 능숙하게 패어 쪼개고 있는 인부. 그늘 아래 쪼그려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며 쉬고 있는 인부들. 얼굴을 찡그리고 그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구경하는 금발의 여행자들. 그리고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시체들. 잘 죽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그저 나처럼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엉켜 본능에 충실하고 있었다.

멍하니 한 시체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냥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렁이는 빨간 불꽃 아래에서 검은 나무가 자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고,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처럼 잿 조각이 바람을 타며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인도인들에게는 갠지스강에서 화장되는 것이 그들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영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에게 갠지스는 신 중의 신이고, 그 강물에 재가 된 몸이 띄워지는 것은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파란 하늘 캔버스 위에 휘갈겨 수 놓이는 하얀 재들을 본다. 어떤 잿 조각은 천천히 나에게 날아와 내 검푸른 티셔츠에 앉았다. 시체에 닿았던 나무였을까, 생각했다.


평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때 웃음 담긴 눈인사를 했지만 여기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어색한 눈 마주침이 여러 번 이어질 무렵, 어디 갔냐는 옆방 동행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같이 먹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지금 걸어도 족히 20분은 걸릴 거리이기에 숙소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천천히 걸으며 옆 가트에 닿으니 목욕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잘 살려고, 깨끗한 사람이 되겠다고 몸을 씻는구나. 기도하는 듯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몸에 비누칠을 하는 한 인도인을 보니 괜스레 엄숙해졌다. 내가 살아온 상식의 눈으로 보자면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강에서 죽으려고 하고 또 살려고 하는 모순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인도인의 눈으로 보자면 그들은 그저 신과 함께 하고 싶다는 하나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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