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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Apr 08. 2018

24. 행복한 사람

바라나시

늦은 밤. 가트가 보고 싶어 혜리와 빤데 가트에 왔다. 까만 밤에 불그스름한 조명으로 채워진 가트는 바람 때문인지 더웠던 낮과 달리 꽤 시원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노숙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바람을 맞으며 고요하고 선선한 분위기를 즐기는데 어떤 거지가 다가오며 작은 목소리로 나마스떼 라고 인사했다. 우연하게도 그때 동시에 혜리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거지는 혜리 등을 지는 방향에서 걸어오며 말을 걸어온 터라 혜리는 거지의 인사를 듣지 못했고 나는 혜리의 말에 대답하느라 거지에게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거지는 약간 머쓱한 듯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반대로 걸어갔다. '약간 미안한걸...' 생각하며 혜리와 대화를 나누는데 그가 다시 내 쪽으로 오길래 이번엔 대화를 끊고 내가 먼저 나마스떼,라고 인사했다. 

그는 나의 반응에 큰 목소리로 다시 화답하며 내 곁에 섰다. 저 멀리 길가에 누워 자고 있는 여인과, 바지도 입지 않고 주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아내와 자식이라고 소개한 그는 느닷없이 내 앞에서 국민체조 같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너무 진지해 보여 웃지는 못했다. 대신 옆에 서서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내 리액션이 흥미로웠는지 그는 갑자기 교관이 된 것처럼 구호를 맞추며 여러 동작을 나에게 선보였다. 주변의 인도인들이 우리를 쳐다보다가 그중 한 인도인이 나한테 와서 말을 걸었다. 

"이 거지는 매일 밤 여기 와서 이런 우스꽝 스러운 운동을 해."
"그래서요?" 

그 인도인이 거지를 설명하는 뉘앙스가 싫었다. 쏘아붙이듯 대답하니 그는 머쓱한 듯 자리를 떴다. 그 사이 운동이 끝난 거지는 내 앞 계단에 앉아 이제는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두 팔을 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또 내가 따라 할 거라는 기대가 있는지 이제는 기도문을 내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한 마디씩 끊어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기도가 끝났고,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꺼냈다. 

"I HAPPY"
"왜?" 

그는 또다시 대답 없이 웃었다. 그래서 나도 대답했다. 

"I HAPPY TOO"

깊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한 대답이지만 사실이었을 것이다. 마음에 그리던 바라나시에 다시 왔고 또 불편 없이 여행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나도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아까보다 더 큰 미소를 보여주더니 이내 소리까지 내면서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사진을 찍자고 했다. 요구대로 사진을 한 장 찍어 보여주니 너무 고맙다며 말하고 일어나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갑자기 나타나서 기도하다 웃더니 행복을 고백한 사람. 그러고 보니 내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꺼낸 게 얼마나 오래된 일일까. 뜻밖의 행복 고백을 바라나시에서 꺼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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