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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Apr 15. 2018

25. 타라 아저씨

바라나시

바라나시는 다 좋은데 숙소가 문제였다. 괜찮다 싶어 체크인해도 하루만 지나면 좀이 쑤시고 왠지 모르게 몸이 불편해 잠자리를 연거푸 옮기게 되었던 거다.<Tara Guesthouse>는 그렇게 옮긴 세 번째 숙소였고, 운 좋게도 마지막 숙소가 되었다.


아침, 게스트하우스에 전화해 남은 방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정리가 다 될 즈음에 스마트폰으로 'Welcome Home'이라는 메시지가 오길래 주인이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도착하니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 합장하며 장난스레 나마스떼,라고 인사하며 우리를 환영한 그는 기회만 보이면 자꾸 우리를 웃기려고 했다. 웃기려고만 한 것은 아니라 여기를 친근하고 편안하게 여기도록 신경 써주는 모습이었다.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처음 보낸 문자메시지의 'Home'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아 좋았다.

그와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카카오톡'이다. 신기하게도 스마트폰에 카카오톡을 설치하고 한국인들로부터 예약을 받길래 '어, 나 이 회사 다니는데'라고 말하니 놀라워하며 어떤 일을 하냐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한 거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간단히 말해 큰 회사들은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돈을 많이 벌었고, 다시 그 사회를 위해 어느 정도 그 돈을 써야 한다는 책임 같은 거예요. 많은 회사들이 돈을 어딘가에 기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회사는 그것보다 회사 사람들의 인력과 재능으로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어 해요."
"그게 어떤 건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을 이어주는 플랫폼을 인터넷에 만드는 거예요. 카카오톡은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다 쓰니까 여길 통해서 도움을 알리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런 일에 본인도 참여하고 싶다면서 본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삼십 년 동안 호텔에서 일하면서 젊은 시절을 어렵게 보냈어. 인도 사람들은 참 약았어. 하루에 8시간 일하는 걸로 계약해 놓고서는 매일 14시간을 넘게 일하게 만들고, 그나마 월급도 두어 달이 지나서야 쥐어주곤 했지. 정말 어렵게 돈을 모아 30년 뒤에 방 한 칸을 얻으면서 내 호텔을 시작했어. 그리고 그게 4개가 되고, 지금 이렇게 16개 객실을 마련한 거야. 이제는 매일 모든 객실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생겼어. 돈도 이제는 많이 모이고 있어서 단지 모으는 데에서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네가 말한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나도 참여하고 싶어. 참여해서 드는 느낌은 행복이라기보다 만족일 것 같아. 아니, 인도에는 그런 플랫폼이 없으니 네가 여기에서  그런 걸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돕고 싶구나. 유니세프 같은 곳은 돈을 기부하면 어디로 가는지 잘 알지도 못하잖아, 그런 면에서 네 플랫폼의 장점이 큰 것 같아"

"맞아요. 이렇게 누군가 도움을 주면 나중에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 또 나중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그랬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집이 망하고 몇 개월에 한 번씩 쫓기듯 이사를 다녔어요. 그때 몇 년 정도 기관을 통해 도움을 받았거든요. 제가 직접 쓰지 않아서 기억은 안 나지만 한 달에 몇십 달러씩 받았던 것 같아요. 어려운 시기를 지났고 이제 어른이 된 저는 돈을 곧잘 벌어요. 부모님한테 생활비를 드리고 또 남을 도울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으니 좋은 순환을 만든 거죠."

나를 응시하며 대화를 듣던 그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울었다. 무엇이 그의 눈물샘을 자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하는 일과 경험에 공감한 게 아니었을까. 대화를 잇다가, 나중에는 숙식까지 제공하고 보수도 챙겨주며 방갈로르 지인을 통해 엔지니어 팀도 만들어 줄 테니 인도에도 그런 걸 만들자고 했다. 그의 제안이 흥미로웠지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지는 것 같아 한국에 돌아가서 할 수 않는 작은 것부터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와 대화하다 마지막에는 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며 벌건 눈을 한 채로 같이 사진을 찍자더니 카톡 프로필 배경화면을 그것으로 바꾸었다. 괴짜 아저씨다.

며칠 동안 그의 성격처럼 세심히 챙겨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즐거운 생활을 보냈다. 마지막 날 체크아웃을 하러 오피스로 올라갔다. "빈말 아니니까 한국에서 잘 생각해보고 작은 것부터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해보자. 도와줄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6천 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도 생각을 공감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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