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슬 Apr 04. 2018

22. 팀워크

바라나시

첸나이 힐튼에서의 편안한 하룻밤 이후 돌아온 잠자리는 공항의 차가운 바닥이었다. 추웠다. 그렇게 보낸 첸나이에서 공항 노숙, 그리고 오전에 도착해 빠하르간지를 떠돌아다닌 델리의 열 시간 스탑오버를 거쳐 어두운 밤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이기지 못한 피곤함에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정처 없이 좁은 골목을 걷다가 카페 하나를 찾아 자리했다. 그렇게 기대하던 바라나시라지만 막상 딱히 할 건 없다는 생각과 함께 창 밖에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며 멍하니 있자니 지난주 오로빌 생각이 많이 났다. 오로빌에서 지낸 시간은 5일, 폰디체리의 시간까지 합치자면 6일인 셈인데,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라던 오로빌과의 만남이 가장 큰 이유가 되지만 오로빌에 농사하며 살던 선영과 같이 머물던 태준과의 만남도 큰 역할을 했다.

처음 가네쉬 빵집에서 그들을 만난 날, 나는 오랜 기간 준비하고 기다렸던 면접을 보는 것처럼 오로빌에 온 이유와 내가 그들이 살고 있는 오로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그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즐거웠고 그들의 삶을 듣는 것도 즐거웠다. 대화의 내용을 떠나 지금 내가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첫날에는 늦게 만난 것도 그렇고 어두울 때 오토바이를 타는 게 두려워 해가 질 무렵 인사를 하고 짧은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난 점심에 또 그들을 찾아 만났다. 레스토랑 <Mother Of Grace>에서 도사를 먹으며 다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섞었고, 많이 웃었다. 이튿날은 점심을 먹은 후 해질녂까지 수다를 떨다 내가 지내는 게스트하우스에 초대해 저녁마저 같이 먹고 방에서 더운 선풍기 바람 아래 깊은 밤이 올 때까지 술 한 방울 없이 웃으며 대화했다. 열 시간이 넘게 말을 주고받은 것이다. 또 다음날에도 그들이 사는 집으로 가서 그만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고, 그렇게 숙소로 돌아온 후 잠을 자고 다음 떠나는 날에는 아예 짐을 싸고 그들 집에 가서 버스를 타기 전까지 수다를 떨다 시간에 쫓겨 집을 나설 정도였다. 

무엇이 그렇게 아무 연고 없는 우리들을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게 만들었을까. 우리 사이에 어떤 힘이 작용했던 걸까, 도저히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렵게 추측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꺼냈을 때 웃고 들어줄 준비가 되었던 우리가 아니었을까, 타인의 이야기가 고팠던 서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좋은 팀이었다. 

우리는 다들 보통 외롭다. 혼자 있으면서도 눈에 띄게 있고 싶은 게 사람이고, 결국은 서로 밀고 당기며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어떤 공동체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불안함이 없어지고 안락함을 느끼는 게 우리이다. 딱히 그걸 피하며 아픈 고독을 씹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밀면 적당히 밀리고, 당기면 조금씩 따라가며 어울리면 서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때 처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의 이야기겠지만.

이전 21화 21. 10루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