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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Dec 08. 2021

공항

단편 소설

히드로공항 5번게이트를 한 남자가 빠져 나온다. 비가 내린다. 검은색 후드티 모자를 재빨리 머리에 쓰고, 왼손으로 파랑색 캐리어를 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주차장에 도착한다. 맨 안쪽에 세워진 차의 트렁크를 열고, 캐리어를 넣는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와이퍼를 켠다. 출구에서 요금을 정산한다. 한 손은 운전대를 잡고 있고, 반대편 손가락을 가볍게 톡톡 튕긴다.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매주 화요일 아침 아홉시. 그는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시시했다. 마흔 다섯살, 앤드류는 사진으로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다. 몇 번의 전시회도 열었지만, 재능은 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다. 사물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되는 일은 주말에 웨딩사진을 찍는 거다. 사람들과 감정을 소비하고 나면, 평일에는 보통 집에서 음악을 듣거나 나무조각을 한다. 담배파이프, 스푼, 새. 기분내키는 대로 만지작거리다 보면 뭔가 만들어진다. 동네친구들과 모여 가끔씩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펍에 가서 위스키를 마신다. 마지막으로 언제 애인을 사귀었는지 기억하지 못 할 만큼 연애와는 멀어졌다.  

   


한 시간 후, 런던의 동쪽, 앤드류의 집에 도착했다. 뒤뜰에 차를 세우고, 여행가방을 꺼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 놓는다. 차열쇠를 현관에 걸어 놓고, 부엌으로 간다. 모카포트 보일러에 물을 붓고, 바스켓에 원두커피 한 스푼을 넣고, 긴 손잡이로 평평하게 깎는다. 윗부분을 끼워 가스렌지에 올린다. 2분 뒤, 치익 소리가 난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두 다리를 테이블 모서리에 걸치고, 옆에 커피를 놓는다.

“이 가방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발로 슬쩍 밀어 본다. 저녁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은 눈치다. 그제서야 커피를 한번에 들이킨다.

“아, 그거였으면 좋겠어.

팔로워수를 2만명 늘릴 수 있는 그런거 있잖아.” 생각만 해도,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굽고, 토마토샐러드를 만들어서 점심을 먹었다. 소파에서 낮잠을 잤다. 오후에는 샤워하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른다. 집에 돌아와서 화장실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춘다. 아침과는 달리 말쑥한 옷차림에, 인상도 조금 세련되 보이는 것 같기고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부쩍 동네에 힙스터가 많아졌다. 그들은 자신이나 친구들과는 달리 성공하고 인기많은 예술가들이다. 본인은 운좋게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이 주택을 물려 받았다. 그가 어린 시절, 동쪽은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다.


십오년 전부터 월세가 싼 곳을 찾던 젊은이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특히 돈은 없고, 시, 그림, 악보같은 영감만 가득한 인간들. 함정은 현재는 부동산가격이 계속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빈티지 옷가게, 갤러리, 바, 코워킹 플레이스. 겉으로는 가격도 적당해 보이고, 새로운 개념의 장소같지만, 상업적으로 변질했고 싸지도 않다. 어느 날, 길을 걷던 앤드류는 이런 부류의 예술가들이 모임중간에 잠깐 담배피우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대화는 한 때 자신도 20대였을 때, 사진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 있다는 과거를 상기시켰다. 그 날부터, 그는 밤에 뒤척였고, 쉽게 잠들지 못했다. 빨리 돈을 모아서, 웨딩사진이 아니라 진짜 그가 원하는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별볼일 없는 동네 사진작가가 아니라, 잘 나가는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싶었다. 예술에 대해 토론하려면 자신도 뭔가 진짜 예술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를 꺼내 뒷마당으로 나간다. 창고 문을 열고,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누른다. 벽면을 따라 높다란 선반이 있고,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마네킹, 우크렐레, 스키, 비키니, 신발, 책, 냉장고 자석, 와인, 속옷, 자전거 바퀴, 안경, 조각품, 엽서, 서류뭉치들, 장난감 로봇, 채찍. 그가 지난 4개월동안 수집한 물건들로 꽉찼다. 진열품을 하나씩 훑어보며, 주인을 자주 상상한다. 어떤 휴가였는지, 출장이였는지 상상해 본다. 소지품을 단서 삼아 주인의 직업, 성격, 취미를 추리하는 일이 남자의 취미이다. 시작은 그저 몇 줄짜리 인터넷 기사였다. 히드로공항에서 매년 7백만개의 수화물이 주인을 찾지 못한다고 했다. 3개월동안 찾아가지 않은 분실물은 일주일에 한번씩 경매에 부친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무료한 나머지 그는 경매에 참여했다.


수트케이스가 두 개가 되었을 때, 재미삼아 물건들을 줄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인스타그램에 그것들을 올리고, 탐정놀이를 했다. 사람들이 꾸준히 오다가, 어떤 인플루언서가 좋아요를 누르고 나서, 왕창 몰렸다. 팔로워 5백명에서 오늘까지 3만명으로 늘었다. 내친김에 가방을 열고 물건을 꺼내 사진찍는 과정을 유투브 라이브로 공개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가방 안에서 무엇이 튀어 나올지 아무도 몰랐다. 그 점이 모두를 짜릿하게 했다. 앤드류도 거기에 포함된다. 피가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살아 있다는 느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오랫만이다.  


맥주를 꿀꺽거리며 단숨에 마시고 찌그러뜨렸다. 시간이 됐다. 테이블 위 삼각대에 고정된 아이패드에서 유투브앱을 누른다.

“안녕하세요. 앤드류입니다. 일주일동안 잘 지냈나요?”

익숙한 아이디와 몇몇 새로운 아이디가 인사한다. 그는 양손에 라텍스 장갑을 끼며, 아이패드를 올려다 본다.

“여러분들 오늘 밤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요?”

댓글창이 움직인다.

“팬티스타킹, 총, 고양이, 외계인, 보물, 해적, 티팬티, 손가락.”

“자, 그럼 시작해 볼께요.”

그가 지퍼를 내리고, 가방을 펼쳤다. 한눈에 봐도 옷 뭉치 뿐이다. 앤드류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예감이 좋지 않다. 흰색셔츠를 앞뒤로 뒤집어서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한 후에 내려놓는다. 이런 식으로 양말, 삼각팬티 3개, 야구모자, 얇은 점퍼. 수건, 전기면도기, 청바지를 하나씩 펼쳐서, 옆에 나란히 놓았다. 그동안 화면은 얼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재미없다는 뜻이다. 그가 뒷덜미를 만지고, 눈동자를 굴린다. 흰색 목욕타월을 집어 들며, 생각했다.

‘벌써 끝났어. 젠장. 큰 가방을 고를 걸 그랬어.’


수건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밑바닥에 끈 달린 검은색 화구통 세 개가 드러났다. 윗쪽 뚜껑을 돌려서 연다. 긴 통을 거꾸로 세우고 흔든다. 길다란 물체가 뚝 떨어지더니, S자 모양으로 꿈틀거린다. 그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난다. 딸국질을 한다. 얼핏 봤을 때는 뱀인줄 알았다. 화면이 빠르게 움직인다.

“뭐야? 말꼬리?” “밧줄?” “소름.” “가발?” “남자가방에서 여자 머리카락이 왜 나왔지?” “누구꺼지?”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그는 물끄러미 그것을 본다. 길게 땋은 검은색 머리카락이다. 윗부분은 검은색 헤어밴드로 묶었고, 끝부분은 빨간색 리본으로 매듭지어졌다. 일어나서, 그것을 들었다. 가슴에서 시작해서 남자의 무릎에 닿는다. 머리를 테이블에 도로 놓는다.

‘이 여자는 몇 살일까? 이 정도 길이라면 적어도 서른 살은. 아니, 만약 누군가가 평생 길러온 머리라면. 소녀일 수도 있어.’

그러자, 척추에 찌리릿 전기가 흐른다. 나머지 두 개의 화구통도 긴 머리카락이다. 하나는 양갈래로 땋은 머리였고, 마지막은 땋지 않은 머리다. 그것들은 첫 번째 머리카락만큼 길지는 않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린다. 얼굴을 든다. 화면에 조용하게 비가 내린다. 모니터에 비친 앤드류에게 돈이 쏟아진다. 100파운드, 200달러, 40유로, 10만원, 250프랑. 경쟁하듯이 슈퍼챗을 뿌린다. 파랑, 노랑, 주황. 잭팟이 터졌다. 빨강색 500달러와 메시지가 화면을 채운다.

“내 스타일이야.”

후원금과 메시지가 상단에 쌓이고 있다. “나도 긴 생머리 패티쉬를 갖고 있어.” “너무 흥분되.”    

 


다음 날, 아침 앤드류가 침대에서 눈을 뜬다. 오른팔을 뻗어 스마트폰을 당긴다. 유투브앱을 열고, 왼쪽 메뉴에서 수익창출을 누른다. 벌떡 일어난다.

“할렐루야. 오 신이시여. 꿈이 아니었어.” 매트리스 위에서 껑충껑충 뛴다. 가파르게 상승세를 타던 구독자수가 지난달부터 주춤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뭐든지 빨리 싫증을 낸다. 그런 타이밍에, 한 건 터졌다. 지금 30만 명을 넘었다. 부엌으로 가서, 모카포트에 물을 부으려다가 멈춘다. “지겨워. 이런 생활”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집에서 15분 걸어서, 브릭스레인에 있는 커피숍에 간다. 에소프레스 한잔을 시키고, 마음을 바꾸어 브런치를 추가한다.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한결같이 멋낸 사람들뿐이다. 이 카페는 다른 곳보다 가격이 두 배 비싼 핫플레이스다.본격적으로 일을 그만두고, 유투버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시간은 많아지고, 수입도 훨씬 낫고, 게다가 유명해지는 일이다. 프리랜서에게는 인지도가 중요하다. 그게 곧 일감이 되니깐.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카메라를 들고 창고에 간다. 지난 밤에, 줄지어 놓은 아이템을 한 개씩 사진찍는다. 그 중에 점퍼를 자세히 보니, 가슴부분이 약간 볼록하다. 겉감을 뒤집는다. 안쪽 주머니에 아이팟이 있다. 일단 그것도 카메라에 담고, 다른 물건으로 계속 넘어간다. 메모리카드를 빼고, 구석에 있는 노트북에 꽂는다. 사진을 업로드하고, 스마트폰에 연동시킨다. 인스타그램 업데이트를 마친다. 그는 휘파람을 불다가, 아이팟에 시선이 멈춘다. 케이블을 아이팟에 꽂고, 한 시간후에 페이스북계정을 찾는다. 그는 양손을 책상 위에 포개고, 관절을 하나씩 꺾으며, 모니터에 집중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며 중얼거린다. “20대, 남자, 아프리카사람.”      


남인도의 작은 마을 마말라뿌람. 갈색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시장을 걸어가고 있다. 주위는 온통 꽃더미다. 노랑색, 주황색, 흰색 꽃이 흰 실에 꿰어 똬리를 틀고 있다. 힌두교 사원에 꽃을 바치는 일은 그들의 일상이다. 사리를 입은 여자들의 뒷모습 한결같이 긴 머리에 꽃장식을 하고 있다. 쟈스민향이 퍼진다. 여자아이는 시장을 지나, 한적한 시골길에 이른다. 그녀의 집은 5킬로미터 떨어진 길 끄트머리에 있다. 자전거 바퀴 소리가 난다.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소녀를 천천히 앞지른다. 멀어지려나 싶을 때, 갑자기 자전거가 방향을 틀어 그녀에게 돌진한다. 남자는 여자아이를 쓰러뜨리고, 등위에 올라탄다. 가방에서 테이프를 꺼내 손과 발을 묶는다. 가위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재빨리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다. 흙먼지가 날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그 남자의 눈이다. 그녀를 해치겠다는 눈빛. 이불을 머리끝까지 쓰고, S는 숨죽여 운다. 학교에 못 간 지 3개월이 넘었다. 소문은 마을과 학교에 빛의 속도로 퍼졌다.

S가 속옷이 벗겨져 있었다. 머리를 삭발했다. 남자친구가 있다. 정신이 이상해졌다.

“이게 무슨 망신이야. 결혼은 이제 다 글렀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화내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마말라뿌람. 여자들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등뼈를 넘는 긴 머리를 땋거나, 묶거나. 매일 빗질을 하고, 자주 참기름을 발라서 윤을 낸다. 이 일은 여자의 미덕이다. 커트, 단발머리는 델리나 뭄바이같은 대도시에는 흔하지만, S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관습은 생명력이 질기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학교친구가 왔다. 대뜸 샤오미폰을 S에게 내밀었다. 그녀의 입이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래, 네 머리카락! 누가 인스타그램에 올렸어.”

“채팅 해볼래?”

친구가 종이비행기 모양의 메시지 버튼을 누른다. S가 또박또박 쓴다.

    


바로 그 때, 앤드류의 휴대폰에서 알람소리가 울린다. 인스타그램 메시지가 뜬다.

“머리카락 돌려 주세요. ”





여기까지가 처음 써본 저의 단편소설입니다.

S는 어떻게 될까요? 머리카락 훔친 범인은 누구일까요? 앤드류는 머리카락을 돌려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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