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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Jan 08. 2020

두 번은 없다

가을에 큰 언니와 둘째 언니는 생선 사러 부두에 가자고 했다. 나 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두 언니는 운전을 못하는 주부였다. 핑계거리가 다 떨어질 쯤, 나는 새벽에 차를 몰았다. 부둣가에 제일 먼저 도착한 건 코였다. 고기잡이배 사이로 짭짤함, 비릿함, 석유냄새가 훅 들어왔다. 나의 다리는 언니들을 쫓고, 한 손으론 코를 막고, 눈은 생선을 훑었다. 바닥에 있는 물웅덩이도 폴짝 뛰어야 했다. 생선들 중에서도 은빛이 감도는 가을 갈치는 위풍당당했다. 갈치는 아주 비싼 축에 껴서, 한 상자만 샀다.


큰 언니 집에 돌아오면, 두 언니는 갈치를 반씩 나눴다. 그중 몇 마리는 냉동실에 넣었다가, 내가 시골 어머니에게 배달했다. 큰 언니는 물부엌에 쪼그려 앉아서 본격적으로 생선 손질을 시작했다. 머리와 꼬리 끝부분을 토막 내고, 등부분 가시를 잘라냈다. 마지막으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낼 때쯤, 나는 물부엌 미닫이문을 꼭 닫았다. 곧장 비누로 손을 몇 번씩 씻고, 샤워젤을 몸에 붓고 나서야 나는 잠이 들었다.


 늦은 오후에 우리는 식탁에 앉았다. 형부 앞에 한 그릇, 내 앞에 한 그릇, 언니가 본인 국그릇을 놓으면 가을이 시작되었다. 국그릇 속에는 갈치 서 너 토막, 밭에서 따온 누런 호박 , 마당에서 크는 풋고추가 떠 있었다. 국물은 은박지 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거렸다. 딱 한 점은 살집이 두툼한 몸통 부분이었다. 가운데 굵은 뼈에 젓가락을 놓고 바깥쪽으로 살짝 벗겨낸 후에, 살을 입에 넣었다. 이때 잔가시가 촘촘한 바깥 부분은 입술 바깥으로 밀어내야 한다. 이게 귀찮고 어려운 기술이지만, 섬에서 태어난 나는 노련했다. 두꺼운 살은 혀에서 녹았다.


언니는 "배지근하다"라고 제주말로 했다. 꼬리에 가까운 밑부분은 먹기가 쉽지 않다. 살집과 몸집 둘 다 얇아서 젓가락으로 긁을 수가 없다. 이 때는 입으로 살 부분을 바르면서 잔가시 부분을 씹어먹어야 한다. 뼈째로 먹는 셈이다. 이렇게 호박갈치국 한 사발을 들이키고 나면, 며칠 동안 나는 잠잠해졌다.


날 비린내 나는 갈치 냄새는 내 혀에, 위 속에, 머릿속 기억에 들어갔다. 나는 갈치에게 포위당했다. 특히 큰 언니의 수고는 냄새 속 등대 같았다. 비린내 진동하는 부둣가, 물부엌에 있는 언니의 등에서 빛이 새었다. 나는 제주의 바다, 들, 언니에게 코를 박았다. 그건 사랑의 냄새였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지금 그건 그리움의 냄새가 되었다.

호박갈치국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좋아하는 하늘 얘기를 하고 싶다. 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내가 자주 하는 것이 하늘 보기이다. 툭하면 하늘을 본다. 특히 산에서 보는 구름의 움직임, 낮은 사막에서 하늘에 색깔이 번지는 것을 보는 일은 신이 주관하는 일을 곁에서 생방송으로 보는 셈이다. 저녁 무렵 옥상에서 보는 수채화 같은 하늘은 나의 마음을 빗질해 준다. 마음의 결이 생긴다. 하루 동안 고여 있었던 울적한 생각, 외로움, 화가 사라지고, 스케치북처럼 여백이 스며든다. 며칠 전, 라히지에서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별똥별이 떨어졌다. 옛날에는 작가가 되게 해 달라, 여행을 계속하게 해 달라, 사랑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이제 나는 가만히 본다. 별을 그 순간에 느끼고 볼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박갈치국과 하늘 보는 이야기가 어색한 조합처럼 들리지만,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보고 먹어야 하는 게 있다. 제철에 먹는 수만 마리 중의 한 마리 갈치도, 매일 보는 똑같은 하늘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도, 사실은 우리는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우리는 매 순간 달라진다. 그러니 시간을 내서 본방 사수해야 한다. 인생에서 재방송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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