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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Jan 11. 2020

끝까지 걷다

낯선 곳에 도착하면 내가 좋아 하는 건 언덕꼭대기에 올라가  동네를 한 눈에 바라보는 거다. 그러면 내가 어떤 공간에 왔는지 말해준다. 또, 내일은 어는 길로 탐험을 할지 눈으로 정한다. 납작한 종이지도보다 훨씬 스릴있고, 정확한 구글지도에 비하면 눈대중이다. 중요한건 특히 시골마을에는 종이지도가 없고, 영어는 드물며, 인터넷은 신호가 안 잡힌다. 그래서, 나의 발자국으로 여행지의 지도를 만들어햐 한다. 나는 이런 일이 너무 재밌다. 파키스탄의 훈자, 아제르바이잔 라히지, 네팔의 포카라는 다 이런 동네다. 언덕에서 보면 산과 산사이에 실핏줄 같이 길이 얽혀있다.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이 길들을 다 끝낼 순 있을지 설렘과 긴장감이 한꺼번에 온다.


라히지, 포카라, 훈자에 사는 시골사람들은 거리에 관해서는 다 거짓말쟁이다. 매일 아침마다 모험할 이름을 대며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펴서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지그재그로 걷는 시늉을 하고, 시계를 짚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처럼 손가락으로 대화했다. 네시간 걸리면 손가락 네 개를 폈다. 어찌 된 일인지, 이 동네주민들은 손가락을 너무 아꼈다. 분명 네 개 폈는데, 실제 걸어보면 내 손가락은 한 개가 더 필요했다. 결국 그 동네들을 떠날 때 쯤, 나도 그들과 손가락 대화가 쉬워졌다. 나의 걷는 속도가 그들과 조금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아기때 부터 그 산을 걸었던 동네사람들이다. 슬리퍼를 신고 산길을 잽싸게 타는 사람들과 그 길을 처음 걸으며 툭 하면 멈춰서 감탄하는 여행자와 걷는 속도가 같을 순 없다.


실핏줄 하나 씩 걷고 돌아오면 나는 늘 방에 쓰러졌다. 햇볕에 얼굴이 벌개지고, 다리가 흔들려서 바닥에 누웠다. 목은 바짝 마르고, 숨은 겨우 쌕쌕 쉬고 있을 때, 이런 생각 들 때 있다.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매번 이런 꼴이지?'


몇 주전, 트빌리시를 떠날 때, 나의 오랜 여행 친구 등산화와 작별을 했다. 우린 다시 만날 수 없다. 네팔, 파키스탄의 히말라야를 같이 걸었다. 아무리 아끼던 친구였지만, 이제 안녕이라고 말해야 했다. 멋스럽던 고어텍스 가죽의 부드러움은 흔적도 없어졌다. 거칠고 투박한 껍데기엔 틈이 생겨서 소나기만 와도 물이 샌다. 특히 네팔에서 몇 번의 대수술을 했다. 실밥이 남아 있다. 신발 앞 가죽창도 덧댔으며, 신발 안 쪽 뒷꿈치도 다 까져서 새로운 지지대를 넣었다. 뒷꿈치는 닳아서 평평하게 서 있기도 힘들었다. 신발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건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끝을 정하지 않은 여행이 시작되고, 조금씩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티셔츠,양말, 신발을 버릴 때 마다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한 번도 구멍난 옷을 집에서는 입은 적이 없다. 물건,옷이 넘쳐 고르기가  힘들 뿐이었다. 청바지까지 닳아서 옷수선가게에서  누벼 입기도 했다. 나는 옷에 흙이 묻었거나 구멍이 나거나, 샌달이 찢어져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어디에서 신발을 수선해서, 내일 모험을 떠날지만 생각했다. 남의 시선도, 내 마음 속 두려움도 점점 작아졌다. 오로지 가고 싶은 장소만, 만나고 싶은 사람만, 내가 찾고 있는 질문에 대한 대답만 생각했다. 골목길의 모퉁이, 어둠 속 오솔길 끝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지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끝까지 걸었다.


도둑, 히피, 마술사, 보디가드, 라이프코치, 순록목동, 극장피아니스트, 사미족,히치하이커, 트럭운전수, 길거리 시인이 나를 마중나왔다. 삶의 여러 가지 모양을 경험했고, 걷는  끝엔 이야기가 남았다. 무수한 점 중의 하나가 니라, 여행자를 껴안고, 자신의  신화를  들려주는 오직 한 명의 존재.

내게 별처럼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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