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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Feb 06. 2020

 아침  여덟 시와 오후 네시의 히말라야

필과 지우개를 샀다. 상점  문을 닫고  돌아서니 콧노래가  나왔다. 엄마를 졸라 원하는 과자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양볼과 광대가 치켜 올랐다. 볼펜이  있는 내게 이 두  가지는 사치품이었다.


배낭  싸는 게 골칫거리였다. 나 혼자 나푸르나를 20일 정도  걸을 계획이었으므로, 생존에 필요한 물건만 함께 하기로 했다. 그중에 내 허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그러다 보니  오로지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포카라에서  산 침낭, 스마트폰, 신용카드, 그러다가 지갑은 통째로, 여권도 뺐다. 산에서는 트레커 신분증이면 되니깐. 그리고 나서  모험을 즐기기 위해  쓸모없는 물건도  집어넣기로 했다. 망설이지 않고 카메라를 넣었다. 일기장을 다가 뺏다가 도로 담았다. 볼펜과 함께. 일기장은 부피나 무게가 부담스러웠다. 5410미터를 넘을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침낭을 빼고, 카메라와 일기장을 나의 작은 집에 넣은 대신, 매일 더러운 산장 이불을 덮어야 할 판이었다. 스케치를 위해  연필과 우개도 필요했지만, 히말라야 앞에선 멈칫했다. 결국 두 개의 욕심은 뺐다.


안나푸르나 정상을 넘은 후에는 고도가 계속 낮아지고, 물건을 공수하기가 쉬워졌다. 마음만 먹으면 지프차를 타고 도시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일층에서 이층을 걸어도 숨이 지 않았고, 뜨거운 샤워도 가능했다. 신경 쓸 일이 줄어드니 도시에 두고 온 낭만이 생각났다. 연필과 지우개.


마파라는 작은 마을.

안나푸르나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는데, 12시는 정상이고, 이 마을은 9시쯤 된다. 11시부터는 , 오토바이 때문에 걷는 일이  꽤 귀찮아졌다. 마파는 찻길이 마을을 비껴갔다. 그래서 마을은 작고, 길이 좁아 걷기 안성맞춤이었다. 길과 벽이  우유에 회색 돌가루를 금 뿌린 것 같았다. 산책을 하다 열린 문을 들어가  보니 사원이었다. 사원을 보고 나오려는데, 가파른 계단에서 두 명의 승려가 팔을 불었다. 히말라야의 바람에 날리는 나팔 소리, 스님의 자락. 다음  날, 아침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사원을  지나치려다 마지막으로 눈에 또 담고 싶었다. 높은 계단에 서니  마을이 한눈에 였다.


네모나고 납작한 지붕, 그 위에 쌓인 장작더미, 어제

오후 네 시의 소리.


어떻게든 붙잡아 두고 싶었다. 가방을 내려놓을까 말까 망설였다. 사원 문 앞에서 들어올까 말까처럼, 산에서도 걸어야 할 총량 같은  게 있어서 원하는 게 있어 머뭇거릴 다. 생명유지, 트레킹에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그런 점에서는  산 밑에서의  삶과 별반 차이가  없다. 어찌된건지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계단 구석에 앉았다. 배낭은 발밑에 두고  지붕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사원에서  군가 나와  내 수첩을 보다  금새 갔다. 구경꾼은 대단한 그림을 기대했다가 시시해졌음에 틀림없다. 아직은 흩어진 선 뿐이었으므로.

 

연필심은 거침없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여  점, 선, 면으로 이동하고 뚝딱 사물, 인물, 풍경을  만든다. 연필은 사람을 주체적으로 살게 한다. 여러 개의 그림과 손글씨를  섞어도 친구들은 금방 주인을 찾아낸다. 글씨체와 드로잉 스타일은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 다닌다. 연필심을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에는 고유한 패턴이 있는 모양이다. 연필은'지울 수 있어서'가 가장 큰 매력이다. 언제든 생각을 고칠수 다는 뜻이다. 단연 연필의 단짝은 지우개다. 연필이 맘 놓고  쓰거나 그릴  수 있는 건 옆에 지우개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빨리 종이를 문질러 선자국을 지우고, 깨끗한 바탕으로  되돌리면 연필은 꿈을 펼친다.  나이 든 고무지우개는 지우는 과정에서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흡수한다. 젊어서는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이제는 흑연심에  물들어  종이 바탕에 자신의 흔적을 흘리기도 한다. 지우개 가루를 손바닥으로 쓸고  나면, 부쩍 작아진 몸통이 보인다. 하얀 네모 모서리가 까맣게 닳아 가는 모습은 운동화 밑창줄어드는 모습과 닮았다.


온전하고 심플하게 살고 싶은 여행자의 태도에 지우개와 연필은 잘 어울린다. 싸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있고, 휴대하기에도 좋다. 지우개 달린 연필까지  있으니 말이다. 물감과 색연필처럼 양한 색깔을 세상에 입히기에는 물론 한계가 있다. 거꾸로 나는 과 백으로 구분할 수 있는 단순한 세계가 쏙 맘에 든다. 가 몸 담고 있는 세계가 복잡해질수록  단순한 공간이 절박하다.


 이제 메모, 그림까지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선호하시대가 었다. 그런데, 나는 손으로 고쳐 쓰고, 손으로 그리는 게 재밌다. 엄지와 검지로 연필을 마름모로 꼭 쥐고, 새끼손가락과 주먹 옆면으로  받친다. 실핏줄이 두드러진다. 그러면, 핏줄의 힘과 의지가  손가락 끝, 손목, 팔뚝, 어깨, 뇌로 퍼진.  내 마음이  삼각형 모양으로 바뀌고, 몸과 마음의 아귀가 철커덕 맞는다. 그 때, 나는 평온하다.


연필을 쥐면

이 종이에 닿아 , 슥삭슥삭 마찰하는 소리뿐이다.  잡생각이 사라진다. 특히  내 안에 매일 조잘대는  새 한 마리가 사는데,  그 새가 침묵하는 순간이다. 가지런히 포개진  장작개비, 바람에 끊임없이 나부끼는  오색 깃발, 가만 서 있는  뽀얀 벽이 된 것처럼, 나는 사라지고  히말라야 풍경의 일부가 된다. 나는 이것을 그리기 명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몰입하는 시간 동안은 동그랗게 말린 등, 목, 팔의  감각이 잠을 잔다.  연필을 놓고, 기지개를 켜면 엉덩이가 시리고, 어깨, 팔이 쑤신다. 감각의 세계로 몸이  회복된다.  포슬포슬한 지우개 가루가 무릎  위에 수북하다. 삐죽 새장 속의 새가 말했다.

 "벌써 한 시간 반이나 지났어. 다른 트레커들은 너를 저만치 앞질렀어. "

아까만 해도 '세상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지 간에 상관하지  않아. 나는 그려야겠어.'라는 생각으로  히말라야의 아침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는데만 열중했던 두둑한 배포는 갑자기 사라지고, 나는  분주하게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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