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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Jan 25. 2023

중경외시

보다 나은 삶

  분당에 위치한 유명 사립고등학교에 방과 후 강사로 초빙된 일이 있었다. 학원 강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방과 후 수업이 교사들에게 용돈을 벌게하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는 걸 아는 까닭에 쉽게 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구부장을 맡고 있던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에 딱 한 달 동안만 진행하기로 약속하고 출강하게 되었다.

  첫날 학생들을 만나기 전 젊은 남자 선생님이 찾아와 인사를 나눴다. 본인이 방과 후 수업 담당이란다. 그리고 현재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단다. 졸업한 지는 벌써 5년째라니 그 동안 맘고생이 심했으리라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우연히 출신학교에 대한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대학은 어디 나오셨나요?"

  참, 오지랖도 넓다. 굳이 처음 만난 선생에게 졸업한 대학까지 물어볼 건 또 뭔가. 물론 그가 자꾸 본인이 졸업한 학교가 별로라고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정교사가 안 되는 이유가 바로 학교탓이라니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키 어려웠음도 사실이다.

  "중경외시보다는 좋은 학굔데요......"

  <중경외시>보다 좋은 학교란다. 그렇다면 아마도 <서성한> 정도에 속하는 곳일 게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만 한양대학교일 확률이 좀 높아 보인다. 그냥 순서가 서성한이니 한양대가 게중 마지막 아닌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한양대학교 맞나요?" "네......"

  그에게 교사 임용 여부는 학교탓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자, 말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미 패배의 그늘이 얼굴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수업은 여느 때 학원에서 하는 수업보다 열정적이었음은 물론이다.

  

  교사가 할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라 알고 있다. '가르치고 기르는데' 좀더 노력하지 않고 졸업한 학교 탓만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 또한 아이를 맡길 자신이 서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 중시 경향을 젊은 선생은 십분 이용할 줄 알았다. 자신의 패배 의식에 대한 핑계거리로 이러한 문제 상황을 활용할 줄 아는 영특한 모습은 오히려 패배자답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경외시보다 나은 삶은 어떤 것일까?

  

  벌써 10 여 년 전의 일이라 요즘 세태와는 맞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 학원을 찾아와 재수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공대 보다는 의치한이 먹고 살기 좋아서라던 한 어머니의 말로 보아 지금 우리의 모습도 그때와 크게 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스카이를 날고

  서성한을 누리고

  중경외시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밤새 한대 정문을 오가는 꿈만 꾸었다.
난 그 대학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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