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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Jan 30. 2023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그래서 정당하게 나이들고 싶다.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아직 해야할 일은 태산인데 여기 저기가 삐걱된다. 꼭 아프다기 보다는 불편한 일상이 나의 곁에서 함께 하고 있다. 써야할 돈은 많은데 벌어지는 돈은 그대로다. 그나마 아이들의 미래를 그리며 잠깐 웃어보는 일과 복권을 산 후 이런 저런 상상을 할 때가 행복하다.


  어느 날은 골반쪽이 뻐근하다가 팔꿈치나 손목이 아프기도 한다. 허리 통증은 고질병이다. 몸무게는 왜 이렇게 주변에서 질척거리나. 살을 뺄 시간은 당연히 없다. 굶을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먹어야 움직일 것 같으니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부당하게 늙어 간다.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가는 게 아니다. 나이가 나를 키우는 게 아니다. 경륜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점점 여유가 없어진다. 아직 해야할 일이 20 년 치는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나마 고마운 일은 아직까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남아 있음이다. 감사한 일은 할 수 있는 일이 끊임없이 생김이다. 어린 자식들이 식탁 앞에서 말 상대를 해줌이다. 아내가 아직까지 믿고 의지해 주니  이것도 감사하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정당하게 나이 들고 싶다.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처음 간행할 때 정지용 시인이 서문을 작성하였는데, 글의 시작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재주도 탕진하고 용기도 상실하고 8.15 이후에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광복 이후 무기력한 날을 지내던 시인이 후배 시인의  유고 시집 간행에 무엇이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아 간신히 무릎을 꿇고 붓을 들어 글로 분향하는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그러고 보면 그의 서문에는 윤동주보다 오래 살고 있음에 대한 한탄이 부당하게도 늙어간다는 말에 담긴 건 아닐까.


  요즘들어 자주 추위를 탄다. 예전에 말하던 '겨울은 시원해서 좋다'라는 말은 쑥 들어가버렸다. 추워서 간단한 운동조차 하기 싫어진다. 이건 의지 탓이 아니라 정서의 문제리라. 그래서 부당하다고 말을 하고 있다.


  문법적으로야 '늙다'는 동사이니 '늙는다'는 말이 성립되도, '젊다'는 형용사이니 '젊는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늙는 것은 과정이고, 젊은 것은 한 때'라는 공식이 성립하나 보다. 이제 정서적 나이들어 감에 의지를 함께 품고 싶다. 앞으로 20년 이상을 정상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려면 내 정서와 몸에 정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정당하게 나이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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