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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Jan 31. 2023

내가 새벽이 될 테니 넌 그냥 아침처럼 살거라.

인성이 실력이다.

  오늘 아침 이른 수업 시간에 박남수의 '아침 이미지'를 강의하게 되었다.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설레는 작품이다.



아침 이미지
                                                                              -  박남수  -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보통 이 작품은 아침이 주는 힘차고 역동적이며 기쁨에 넘치는 이미지를 그린다고 해석한다. 어둠과 아침이라는 일상적인 시간을 대비하여 아침이 되면서 태양의 빛을 받으며 생기 넘치게 움직이는 사물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 유독 '아침'보다는 '어둠'이라는 시어가 내 눈에 들어온다. '새'와 '돌'과 '꽃'을 품고 있다가 순순하게 돌려주며, 심지어 자발적으로 '땅 위에 굴복'하는 어둠의 모습은 가르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미덕이 아닌가 한다. 어둠은 건강한 삶을 잉태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돌려주고 스스로 물러설 줄 안다. 단순한 양보나 겸손이 아니다. 완전한 희생이다.

  교육(敎育)은 '지식을 가르치고 인격을 길러준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키우는 것까지 해야 진짜 교육이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종종 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착하기만 한 아이인데 좋은 대학을 못 보내면 왠지 내가 죄인이 된 느낌이 든다. 반면 생활은 엉망이지만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학원 홍보용 동영상에 얼굴을 내밀면서 마치 처음부터 공부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는 얼굴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은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오늘 한 아이의 입시 결과 소식이 학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한양대학교 정시 (나)군 발표일이다. 강사들은 다들 될 만한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입시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전형 자체가 일반 전형이 아닌 '기회균형'이라는 특이성이 있지만, 그래도 아이 입장에서는 오늘까지 계속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을 게다.

  전화기 너머로 울음이 터졌다. 수능 성적은 기대 이하였고, 자칫 3수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게 더 감정을 격하게 만들었나보다. 그러면서 "평생 써야할 운을 다 쓴 거 같아요."라고 말한다. 어린 녀석이 별 말을 다한다 싶다가도 그런 생각이 무리는 아닌 것도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아이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아! 정말 축하해. 늘 아픈 손가락처럼 맘이 쓰였는데. 드시어 큰 일을 해 냈구나.

**아. 오늘은 기분 좋게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될 거 같구나. 그런데 말이다. 사실 네 인생에 있어 오늘의 기쁨은 평생 기억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어찌보면 네가 한 노력에 비해 너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어. 전형이 어찌되었든간에 너는 충분히 '한양대학교'에 진학할 자격을 갖추고 있단다. '평생 쓸 운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아. 네가 사준 빼빼로가 목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는데 오늘은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구나. 네가 늘 착하게 살아서 좋은 결과가 있는거야. 언제나 내 말 기억하고, 대학 생활하면서 절!대!! 기 죽지 말고. 어려운 일 있으면 샘에게 연락해. 뭐 내가 도와 줄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니.

올 한 해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 인생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내가 새벽이 될 테니 넌 그냥 아침처럼 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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