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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수증기처럼

by 하늘을 나는 백구

한파가 찾아온 아침, 양화대교 북단에서 남단으로 차를 몰고 가다 보니 외쪽 편이 따스하다.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볕이 온화한 느낌이다.

문득 쳐다본 목동, 우뚝 솟은 굴뚝에서 웬 연기가 마구 피어오른다. 자세히 보니 연기가 아니라 지역 발전소 굴뚝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증기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렇게 많은 수증기가 높게 올라가는 걸 보고 있자니 웅장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하늘 끝까지 올라갈 것 같던 그 수증기도 한참을 올라가다가는 흩어져버린다. 그 순간 지나온 내 삶의 궤적이 떠오른다. 한참을 겁도 없이 내려올 것도 없을 것처럼 위만 쳐다보고 올라가던 내 삶이 어느 순간 이유 없이 흩어지고 내려왔던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누구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흩어지고 내려서야 하는 것을



낙화
- 이형기 -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아롱아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피기 때문이 아니라, 지기 때문이다. 꽃이 지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만 펴서 무엇하리. 우리 삶도 결실을 얻기 위해 꽃을 피웠던 것이리라. 그래서 흩어져야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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