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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Mar 31. 2024

햇살은 따스하고 그늘은 시원한 날에

제가 이래도 되겠습니까?

아버지!

당신께서 제 곁을 멀리 떠나시던 날 전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20여 년 동안 이별을 준비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날 이후 가끔은 아버지가 하시던 일들을 떠올리며 살짝 웃어 봅니다. 가령 집안 청소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시면서 굳이 매일 청소기를 돌리시던 모습에서 저의 일상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 참 힘든 삶을 사셨어요. 그때마다 저녁에 소주잔을 비우시던 모습이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때는 그 모습이 진짜 싫었는데 요즘 가끔은 저도 그렇게 소주잔을 기울여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그곳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어머니께서 올 1월에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시고 힘들어하셨는데, 지금은 몸만이라도 편하시라고 그리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거 잘못한 건 아니죠? 아버지 당신께서 곁에 계신다면 당신께서도 그리 하라 하셨겠지요? 

이제, 어머니마저 곁을 떠나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럼 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께서 가실 때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마저 가시면 그때는 아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모셔볼까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제가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아버지께서 곁에 계셨다면 당연히 그리 하라 하실 것을 압니다. 아버지께서는 늘 선한 분이셨으니까요.

오늘 아침 따스한 햇살을 등에 지고, 그늘에서 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걷다 보니 유난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팍팍해요. 그리고 저는 점점 나이 들어갑니다. 자신감도 떨어지고요. 그때마다 아버지께서 제게 보여주셨던 고집스러운 모습도 떠올려봅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조금만 닮아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버지!

살아서는 큰 소리로, 화를 담아 부르던 소리. 그 소리가 지금은 마음속에서 울림으로만 소리쳐집니다. 그리고 지금도 늘 감사해요. 아, 그리고 저를 이렇게 살게 해 주셔서.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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