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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Feb 03. 2024

요양병원과 간병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건대병원을 퇴원한 후 어머니를 하남에 있는 A요양 병원에 모셨다. 한강이 내려 보이고, 깔끔한 시설에 모든 직원이 친절해서 마음이 놓였다. 큰 수술 직후라 심신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겠기에 2번 방문 끝에 요양 병원을 정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구급차로 모시고 나서 1주일 후에나 면회를 신청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 전화 통화는 수시로 했다. 첫 번째 면회에서는 어머니 얼굴이 보기에도 좋고, 편안해 보였다. 진작에 병원에 모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되었다.

  문제는 2번째 면회 때 일어났다. 그 사이 어렵게 생활하는 여동생이 엄마 얼굴을 보겠다고 별도로 면회를 신청해서 빵이며 떡이며 음료 등을 사들고 병원을 방문했나 보다. 나에게는 약간의 감사비를 봉투에 넣어 간병인(6인실에 1명씩 상주하고 있다.)에게 드렸다고 했다. 나는 참 고맙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면회를 가 보니 어머니께서 손주들을 물리치고 내게 귓속말로 돈을 좀 찾아다 달라 신다. 난 깜짝 놀라서 여기서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하니,

  저 선생님(어머니는 간병인을 그렇게 부르셨다.)이 동생이 놓고 간 봉투에 2만 원이 든 것을 보고 자기가 어린애도 아니고 이걸로 뭘 하라고 놓고 갔냐며 침대에 던지듯 놓았어.
내가 그래서 그 애가 어렵게 사는 아이니 받아 달라고 하니 그제야 그걸 가지고 간 모양이야.
네가 힘들지만 나한테 돈을 좀 주면 내가 저 선생님에게 주고 나면 맘이 편할 거 같아서 그런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분명 간병비는 비급여 항목으로 책정되어 어머니 병원비 가운데 제일 큰돈이 드는 항목인데. 또 무슨 돈을 매달 가져다 바치겠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간병인을 불러 상황 파악을 해 봤다. 아래 내용은 간병인 말이다.

  동생이 돈을 놓고 갔길래 내가 애들도 아니고 이 돈을 받아서 뭐 하겠냐고 돌려주려고 했다. 어머니가 변도 치우고 해 주니 미안해서 자꾸 뭘 주려고 하나보다. 난 그런 거 필요 없다. 그리고 다른 침상 환자들 보호자들이 고맙다고 자꾸 봉투를 주는데 내가 그걸 받는 걸 보고 어머니가 부담이 됐나 보다. 굳이 돈 안 줘도 됩니다.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갔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큰 수술을 받아서 심신이 피곤하시다 보니 감정 표현이 과해진 것도 같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딸아이가 성의껏 준 돈을 적다며 돌려주려고 한 데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나 보다. 처음 내게는 120만 원 정도를 찾아오면 1년 비용으로 주고 싶다고 했으니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간병인이 마지막에 한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남들이 주는 걸 보고 부담이 됐다고? 그걸 굳이 병실에서 남들 다 보는 곳에서 좋아라 확인하는 게 무언의 압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몰라서 그랬을까? 

  아, 그러고 보니 예전 교사 생활을 할 때 교무실에서 노골적으로 어머니들에게 촌지를 받던 선생이 떠올랐다. 벌써 20여 년 전인데 한 어머니가 5만 원은 돈도 아닌가 보네... 하며 눈물 흘리고 갔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사회 어디나 공정하지 않은 상황은 늘 있어왔지만 막상 내가 일을 당해보니 서럽고 억울하기도 하다. 

  병원을 나서기 전에 항의를 해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행동이 어머니께 어떤 영향을 줄지 몰라 일단 그냥 나왔다. 다음 주면 명절인데 면회를 가서 봉투를 건네야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니다 봉투를 어머니께 드리고 어머니께서 직접 간병인을 불러 드리라고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이게 뭔 짓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1개월 병원비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물론 어머니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니 감사의 표현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 상한선은 없고 하한선만 정해 놓고 매번 봉투를 만들어야 하느니 차라리 병실 인원 적은 곳으로 이동하는 게 좋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그곳 간병인은 또 어떤 사람일지 모르지 않는가? 이래서 정부에서 추진한다는 간병인 제도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병원 이름은 밝히지 않으려고 한다. 다음 주까지 나도 선을 긋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제발 그 선을 넘지 말기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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