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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Feb 02. 2023

말할 수 있는 비밀 2-(2)

그 사람 캐릭터가 참!

  

인물은 성격(性格, character)을 가리키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인물은 행위의 주체로서 행동하는데,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반응 양식은 그 성격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인물(성격)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것은 사건과 갈등의 전개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며, 이를 통해서 주제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는 일은 소설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시험 문제로 출제되는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해 가장 먼저 시점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시점을 확인하면서 함께 생각해야 할 일이 인물의 캐릭터이다. 다음 작품에 등장하는 '황진사'의 캐릭터를 생각해 보고, 시점과 연관지어 이해해보자.


  길바닥이 얼어붙고 먼 산에 눈이 치고, 먼 산에 눈이 치고, 그 해는 이른 겨울부터 몹시 추웠다. 그 동안 숙부님은 몇 번이나 집에 다녀가시고 관상소 출입도 더러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황 진사의 얼굴은 그 뒤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삼촌을 통해서 그의 시골이 충청도 어디란 것과, 그의 문벌이 놀라운 양반이란 것과, 그의 조상에는 정승 판서 따위가 많이 났다는 것과, 그 자신도 현재 진사 구실을 한다는 것과, 그의 머릿속은 자기 가벌에 대한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가지 우스운 것은 그가 곧잘 진사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처음 관상소에서 어느 장난꾼이 농담삼아 그에게 서전과 춘추를 외게 하여 급제를 주고 진사라 부르기 시작한 것인데, 그 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반조롱으로 ‘황 진사, 황 진사’부르게 되니, 그러나 ‘황 진사’자신은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럴싸하게 여겨, 이즘 와서는 아주 뽐내고 진사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 모른 체하고 있으려니까 그는 화로 곁에서 일어서더니, 두루마기 자락을 뒤로 젖히고 저고리 섶을 위로 쳐들고 손을 넣어 무엇을 꺼내는 시늉을 하였다. 나는 속으로 옷의 이를 잡아 내어 숯불에 넣으려는 겐가 하고 있는데, 그는 또 한 번 나 있는 쪽을 흘겨보고 나서 배를 두르고 있던 때 묻은 전대 하나를 꺼내었다. 전대 속에서는 네 귀가 다 이지러지고 종이 빛까지 우중충하게 묵은 모필 사책 한 권과, 백지로 싸서 노끈으로 친친 감아 맨 솔잎 한 줌과, 휴지 조각 몇 장이 나왔다.

  “거, 무슨 책이우?” 

  내가 이렇게 물은 즉, 

  “아, 주역책이지 그랴.”

하고 된소리를 질렀다. 과연 그 이지러진 네 귀마다 넓적넓적한 괘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주역책임이 틀림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주역책은 왜 하필 전대에 넣어서 두르고 다니냐고 물은 즉, 

  “아 공자님께서도 역은 삼천 독을 하셨다는데 그랴.”

하고, 된소리를 질러 놓고 나서, 다시 조용히 음성을 낮추어,

  “아 여북해 지략의 조종이오? 조화의 근본 아니오?”

하였다.

  나는 처음 관상소에서 그를 보았을 때부터 “하도 지모가 나지 않아 육효를 뽑아 보았노라.”한 것을 들은 일이 있어서, 그가 평소 얼마나 이 ‘지략’과 ‘조화’를 부려 보고 싶어하는 위인인가를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이와 같이 언제나 몸에 지닌 솔잎 한 줌과 네 귀 모지라진 주역 속에서 우러난 음양 오행의 지모 조화가 겨우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 약과, 친구에게 책상을 들리고 다니는 것쯤인가 하고 생각할 때,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녁때가 되어 그는 전대를 다시 배에 두르고 돌아갔다. 종종 오라고 한즉, 매양 신세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하며 절을 몇 번이나 하였다. 

  그 해 겨울, 그는 내가 성이 가시도록 자주 나를, 아니 내 삼촌을 찾아왔다. 그는 언젠가 나를 볼 때마다 오랫동안 삼촌께 못 뵈어 죄송하다고 하였다. 

                                                                                - 김동리,‘화랑(花郞)의 후예(後裔)’ 중에서



  작품 속 주인공은 '황진사'이다. 그는 다소 전근대적이면서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능력은 없지만 체면을 중시한다. 명분을 중시하는 것 같은데 실은 명분에 어긋난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한 마디로 망해가는 조선의 모습과도 유사한 '조선의 심벌'같은 사람이다. 

  '나'는 서술자이면서 지식인이다. 이런 '나'에게 '황진사'의 모습이 좋게 보일리 없다. 그래서인지 황진사를 만날 때마다 경멸하게 된다. 하지만 만남이 계속되면서 황진사와 심리적으로 가까워저만 간다. 긍정적이라기 보다는 연민에 가깝다. 이것이 작가가 작품을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만든 이유일 것이다. 서술자가 작품 속에 있지만 주인공의 일화를 관찰하여 전달만 하는 역할, 그리고 주인공의 행위는 객관적으로 전달하지만 그에 대한 판단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 시점이 주는 효과일 것이다. 


  소설은 다른 문학 작품의 출제보다 과정을 한 단계 더 거친다. 다른 영역은 작품 선정을 하고 나면 문제 출제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작품을 찾았다고 바로 출제할 수 없다. 출제할 부분을 골라내야 한다. 이때 출제자는 출제할 거리가 많은 부분, 결정적인 문항을 출제할 수 있는 부분 등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인물과 관련된 문제를 출제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심리나 성격을 추리할 수 있는 부분을 골라 낼 것이다.


  아래 작품의 '그'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화랑의 후예'를 생각하면서 읽어 보자.



  의 얼굴은 그 바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바쁘다. 자랑스러워할 틈도 없이 바쁘다. 그것은 서울에서의 였다. 그만큼 여기는 생활한다는 것에 서투를 수 있다고나 할까? 바쁘다는 것도 서투르게 바빴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서투르다는 것은, 그것이 무슨 일이든지 설령 도둑질이라고 할지라도 서투르다는 것은 보기에 딱하고 보는 사람을 신경질 나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 김승옥,‘무진 기행’ 중에서



앞서 보았던 '화랑의 후예' 속 주인공에 대한 서술자의 태도와 '무진 기행' 속 '그'에 대한 '나'의 태도는 너무나 유사하다. 비판적이면서도 연민의 감정을 밑에 깔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매우 짧은 부분이지만 대화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시 간다고? 못 간다. 내가 살아난대도 다시는 못 간다. 잔소리 말고 나 하라는 대로 할 뿐이다.”

하고 조부는 절대 엄명이었다. 

  “하던 공부를 그만둘 수야 있습니까. 불과 한 달이면 졸업인데요.”

  “공부가 중하냐? 집안 일이 중하냐? 그것도 네가 없어도 상관없는 일이면 모르겠지만 나만 눈감으면 이 집 속이 어떻게 될지 너도 아무리 어린애다만 생각해 봐라. 졸업이고 무엇이고 다 단념하고 그 열쇠를 맡아야 한다. 그 열쇠 하나에 네 평생의 운명이 달렸고, 이 집안 가운이 달렸다. 너는 그 열쇠를 붙들고 사당을 지켜야 한다. 네게 맡기고 가는 것은 사당과 그 열쇠 - 두 가지뿐이다. 그 외에는 유언이고 뭐고 다 쓸데없다. 이때까지 공부를 시킨 것도 그 두 가지를 잘 모시고 지키게 하자는 것이니까 그 두 가지를 버리고도 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송장 내놓고 장사 지내는 것이다.”

                                                                                                     - 염상섭, <삼대> 중에서



  '조부'는 '손자'에게 공부를 그만 두고 집에 돌아와 '열쇠'와 '사당'을 지킬 것을 엄명하고 있다. 손자의 의견은 절대 들어주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가부장적인 모습이다. 작품에서 '조부'가 언급한 '열쇠'는 재산, '사당'은 가문을 상징한다. 겉으로 볼 때는 재산가로서, 가문을 중시하는 가장으로서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회적 혼란기에 돈으로 신분을 산 비열한 인물이다. 만약 글에 나온 '조부'의 성격을 묻는다면, 아래처럼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가문을 중시하는 가부장적인 인물이다.


  아래는 채만식의 '태평천하' 일부이다. 등장 인물의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보며 글을 읽어보자.



  초리가 길게 째져 올라간 봉의 눈, 준수하니 복이 들어 보이는 코, 부리가 추욱 처진 귀와 큼직한 입모, 다아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의 상입니다. 

  나이……? 올해 일흔두 살입니다. 그러나 시삐 여기진 마시오. 심장 비대증으로 천식(喘息)기가 좀 있어 망정이지, 정정한 품이 서른 살 먹은 장정 여대친답니다. 무얼 가지고 겨루든지 말이지요.

  그 차림새가 또한 혼란스럽습니다. 옷은 안팎으로 윤이 지르르 흐르는 모시 진솔 것이요, 머리에는 탕건에 받쳐 죽영(竹纓) 달린 통영갓〔統營笠〕이 날아갈 듯 올라앉았습니다.

  발에는 크막하니 솜을 한 근씩은 두었음직한 흰 버선에, 운두 새까만 마른신을 조그맣게 신고, 바른손에는 은으로 개대가리를 만들어 붙인 화류 개화장이요, 왼손에는 서른네 살배기 묵직한 합죽선입니다.

  이 풍신이야말로 아까울사, 옛날 세상이었더면 일도(一道) 방백(方伯)일시 분명합니다. 그런 것을 간혹 입이 비뚤어진 친구는 광대로 인식 착오를 일으키고 동경, 대판의 사탕장수들은 캐러멜 대장감으로 침을 삼키니 통탄할 일입니다.

  인력거에서 내려 선 윤직원 영감은, 저절로 떠억 벌어지는 두루마기 앞섶을 여미려고 하다가 도로 걷어 젖히고서, 간드러지게 허리띠에 가 매달린 새파란 염낭끈을 풉니다.

  “인력거 쌕이(삯이) 몇 푼이당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 역시 전라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그 전라도 말이라는 게 좀 경망스럽습니다.

  “그저 처분해 줍시요!”

인력거꾼은 담요로 팔짱낀 허리를 굽신합니다. 좀 점잖다는 손님한테는 항투로 쓰는 말이지만, 이 풍신 좋은 어른께는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다. 후히 생각해 달란 뜻이지요.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

윤직원 영감은 인력거꾼을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풀었던 염낭끈을 도로 비끄러맵니다.

인력거꾼은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 뚜렛뚜렛하다가, 혹시 외상인가 하고 뒤통수를 긁적긁적하면서,

  “그럼, 내일 오랍쇼니까?”

  “내일? 내일 무엇 하러 올랑가?”

윤직원 영감은 지금 심정이 약간 좋지 못한 일이 있는데, 가뜩이나 긴찮이 잔말을 씹힌대서 적이 안색이 변합니다.

  그러나 이편 인력거꾼으로 당하고 보면, 무엇 하러 오다니, 외상 준 인력거 삯 받으러 오지요라는 것이지만, 어디 무엄스럽게 그런 말을 똑바로 대고 하는 수야 있나요. 그러니 말은 바른 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 자못 난처한 판인데, 남의 그런 속도 몰라주고 윤직원 영감은 인제는 내 할 말 다아 했다는 듯이 천천히 돌아서 버리자고 합니다.

                                                                                                   - 채만식, 태평천하 - 중에서


  윤직원 영감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다소 경망스러운 말투를 보인다. 게다가 온몸으로 일하며 간신히 먹고사는 사람에게 인력거 삯을 주지 않고 보낸다. 인력거 꾼은 "그저 처분해 줍시요!"라는 말을 통해 알아서 후하게 돈을 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라며 사람을 돌려 세운다. 윤리의식은 둘째치고 그냥 비정상적인 인물이다.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다. 작품의 배경이 일제치하이고 보면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윤리의식 없는 비정상적 인물


  이렇게 문제를 풀기 위해 작품을 접할 때는 끊임없이 인물의 성격에 대해 고민하해야 한다. 시점은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고도의 전략적 도구다. 이 두 가지를 찾으면서 글을 읽고 있다면 수능 문제에 한 걸음 다가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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