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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Feb 16. 2023

말할 수 있는 비밀 3-(1)

비문학(독서) 이렇게 출제된다.

     흔히들 비문학이라고 하는 '독서' 영역은 지문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다. 각자 전공 관련 내용을 출제현장에서 직접 만드는데, 만약 지문 만드는 작업이 늦어지면 전체 출제 과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속하면서도 신중한 일처리가 필요하다. 

  대개 수능은 시험지 전체의 평균 글자수를 지키려고 한다. 전년에 비해 글자 수가 지나치게 많거나 적지 않게 만든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출제해야 할 글자 수를 미리 정해 주기도 한다. 게다가 지문은 '역사적 가치', '교육적 가치', '글 내용 자체의 가치' 등을 고려하여 창작하게 된다. 창작 후에는 글의 형식적인 측면까지도 꼼꼼하게 점검한다. 가령, 통일성이나 완결성이 부족한 글이라면 검토현장에서 무지막지한 공격을 받게 되고, 결국 지문은 내려가고 만다. (출제 현장에서 창작한 지문을 없애는 일을 '지문을 내린다.'고 한다.) 글의 형식적 측면이 적절하더라도 교육과정에 맞지 않는다면 다시 검토를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비문학의 경우 지문이 통과되면 대부분 문제는 일사천리로 출제된다. 

지문 만드는 일이 8할이다.

 

  출제 현장을 자주 다니는 분들이 계신다. 수능의 경우 2회를 넘어 출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신분 노출을 우려한 이유다. 따라서 3회차 부터 다른 시험 출제로 넘어갔다가 이후 다시 수능 출제로 돌아오는 분들도 과거에 있었다고 한다. 임용고시는 수능 대안으로 자주 언급되는 시험이다. 그만큼 수준 높은 출제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수능 출제를 처음 들어간 해에 있던 일이다. 특정 내용 영역을 담당하시던 교수님께서 쓰러지셨다는 소문이 돌았다. 교수님은 처음부터 지문 완성을 어려워하셨고, 완성된 지문도 검토 단계의 벽을 넘지 못하고 다시 출제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단다. 결국 교수님은 자기 방에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고 지문 출제를 하다 쓰러지신 것이다. 


  수능 출제 현장은 3중으로 감시된다. 제일 밖은 높은 담장이 있다. 안쪽 벽과 사이가 조금 떨어져 있는데 그곳은 정복 경찰들이 지키고 순찰한다. 안쪽 벽을 지나면 운동장이 나온다. 사실 콘도를 통째로 빌려 출제하기 때문에 주차장을 막아 놓았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이제 공항 검색대와 같은 현관문을 통과하면 모든 통신기기 사용이 제한된다.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편해지기도 한다. 다만 가족과 연락이 끊기는 부분이 제일 힘들다. 물론 보안 요원에게 쪽지로 전할 내용을 건네면 그들이 전화 통화를 하고 다시 내용을 쪽지로 전달 받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일을 해 보면 차라리 연락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기분이 든다. 

  콘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출제진과 검토진의 숙소가 구분되어 있다. 물론 1인 1실을 사용한다. 출제하는 사람들이 검토하는 사람과 접촉하다보면 아무래도 문제를 냉정하고 꼼꼼하게 검토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서란다.

  다들 아는 것처럼 콘도는 안쪽에서 문이 저절로 잠긴다. 고로 안에 들어간 분이 열지 않으면 밖에서는 억지로 열 수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출제 교수님 방을 보안 요원들이 마스터키로 열고 들어가 의무실로 실어 날랐단다. 출제 현장에서는 방 한 칸을 빌려 의무실을 꾸리고 있다. 교수님은 그곳에서 수액을 맞은 후 다시 출제로 복귀하셨단다. 물론 어렵사리 문제 출제는 마무리 하셨단다. 

  그 사건 이후 비문학 출제진들은 대략 지문을 A, B, C 등급으로 나눠 미리 만들어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본인 생각에 C급 지문을 올리고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아주 쿨하게 지문을 내린다. 다음 날은 B급 지문을, 그리고 최후에 A급 지문을 올리고 박수를 받는다는 설이 있다. 

  모든 출제자가 이런 식으로 지문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출제현장이 긴장의 연속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출제한 지문과 문제를 몇몇이 돈을 받고 출제하는 사설 모의고사와 비교한다는 일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사설 모의고사'를 풀 시간에 기출 문제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기출을 읽다보면 출제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던 모습들이 상상되기도 한다. 만약 기출을 자주 풀어서 답이 보인다면 앞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귀담아 들으면 된다. 

사설모의고사를 풀기보다
기출문제를 점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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