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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Feb 28. 2023

말할 수 있는 비밀 3-(2)

주제를 찾아라.

  모든 글에는 글쓴이가 강조하는 핵심 내용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주제'란 글 속에 담겨 있는 글쓴이의 핵심 생각을 말한다. 일전에 강조했던 '내용없는 형식없고, 형식없는 내용없다.'는 말에서 '내용'이 곧 주제가 된다. 글을 읽을 때는 이 주제를 염두에 두고 읽어가야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비문학 독서 지문과 관련된 질문을 받다 보면 많은 학생들이 내용 읽기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글을 읽기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기억해야 할 내용이 많아지면서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고 글감이 산만하게 흩어지게 된단다. 이런 현상은 성적이 좋은 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우선 무엇 때문에 장을 보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만약, 아빠 생신 준비라면 이게 곧 중요한 핵심 요소인 주제(Theme)가 된다. 그럼 아빠가 좋아하는 갈비찜과 잡채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문단의 소주제(Topic)라고 한다. 자, 이제 갈비찜을 만들기 위해 정육코너로 가야 한다. 그리고 각종 채소도 함께 담아야 한다. 그리고 당면을 구입한다. 물론 잡채의 재료가 되는 것 가운데 갈비찜과 겹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순수하게 잡채 요리에만 해당하는 재료도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항목을 정해서 물건을 샀으니 계산대에도 장바구니에 정리하기 편하도록 물건을 구분해서 올려 놓으면 좋겠다. 



  이 사례가 꼭 글을 읽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 자세와 방식과 유사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마트에 왔는지는 생각도 못하고 그저 보이는 대로 물건을 카트에 담아 놓는다. 그리고 계산대에 이것저것 올려놓는다. 물론 장바구니는 어수선한 물건들로 넘쳐난다. 이렇게 글을 읽어서야 내용 정리가 된다고 할 수 없다. 


  15 개정 교육과정 이후 '주제통합형' 지문이 출제되고 있다. 일부 교육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지문을 (가) 글과 (나) 글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왜냐하면 (가) 글이건 (나) 글이건 하나의 주제로 통합된 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글에도 하나의 주제와 관련된 서로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래의 예를 보자. 


()

  정립-반정립-종합 변증법의 논리적 구조를 일컫는 말이다. 변증법에 따라 철학적 논증을 수행한 인물로는 단연 헤겔이 거명된다. 변증법은 대등한 위상을 지니는 세 범주의 병렬이 아니라, 대립적인 두 범주가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가는 수렴적 상향성을 구조적 특징으로 한다. 헤겔에게서 변증법은 논증의 방식임을 넘어, 논증 대상 자체의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 즉 세계의 근원적 질서인 ‘이념’의 내적 구조도, 이념이 시‧공간적 현실로서 드러나는 방식도 변증법적이기에, 이념과 현실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이 두 차원의 원리를 밝히는 철학적 논증도 변증법적 체계성을  지녀야 한다.

  헤겔은 미학도 철저히 변증법적으로 구성된 체계 안에서 다루고자 한다. 그에게서 미학의 대상인 예술은 종교,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의 한 형태이다. 절대정신은 절대적 진리인 ‘이념’을 인식하는 인간 정신의 영역을 가리킨다. 예술‧종교‧철학은 절대적 진리를 동일한 내용으로 하며, 다만 인식 형식의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 (중략)

  형식 간의 차이로 인해 내용의 인식 수준에는 중대한 차이가 발생한다. 헤겔에게서 절대정신의 내용인 절대적 진리는 본질적으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예술은 직관하고 종교는 표상하며 철학은 사유하기에, 이 세 형태 간에는 단계적 등급이 매겨진다. 즉 예술은 초보 단계의, 종교는 성장 단계의, 철학은 완숙 단계의 절대정신이다. 이에 따라 예술-종교-철학 순의 진행에서 명실상부한 절대정신은 최고의 지성에 의거하는 것, 즉 철학뿐이며, 예술이 절대정신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지성이 미발달된 머나먼 과거로 한정된다.


()

  변증법의 매력은 ‘종합’에 있다. 종합의 범주는 두 대립적 범주 중 하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도 안 되고, 두 범주의 고유한 본질적 규정이 소멸되는 중화 상태로 나타나도 안 된다. 종합은 양자의 본질적 규정이 유기적 조화를 이루어 질적으로 고양된 최상의 범주가 생성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헤겔이 강조한 변증법의 탁월성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기에 변증법의 원칙에 최적화된 엄밀하고도 정합적인 학문 체계를 조탁하는 것이 바로 그의 철학적 기획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가 내놓은 성과물들은 과연 그 기획을 어떤 흠결도 없이 완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미학에 관한 한 ‘그렇다’는 답변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성의 형식을 직관-표상-사유 순으로 구성하고 이에 맞춰 절대정신을 예술-종교-철학 순으로 편성한 전략은 외관상으로는 변증법 모델에 따른 전형적 구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 내용을 보면 직관으로부터 사유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외면성이 점차 지워지고 내면성이 점증적으로 강화‧완성되고 있음이, 예술로부터 철학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객관성이 점차 지워지고 주관성이 점증적으로 강화‧완성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날 뿐, 진정한 변증법적 종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후략)


(가)와 (나)는 모두 헤겔 철학 중 '변증법의 논리 구조'를 미학의 위상을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가)는 '변증법 논리 구조와 원리'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나)는 '변증법 논리 구조가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두 글을 묶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가)와 (나)는 모두 특정한 철학적 방법에 기반한 체계를 바탕으로
예술의 상대적 위상을 제시하고 있다.


(가)와 (나)를 다른 글처럼 읽어버리면 두 글의 관계나 공통점과 차이점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갈비찜과 잡채의 재료에 '당근'은 공통으로 들어가지만 '부추'는 잡채에만 들어가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모든 글에는 '주제'가 있다. 어떤 문제를 풀든지 '주제'를 전제로 답을 찾으면 매력적인 오답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된다.

  

다음 물음에 답해 보자.


예술‧종교‧철학 간에는 인식 내용의 동일성과 인식 형식의 상이성이 존재한다. (O,  X)

절대정신의 세 가지 형태는 지성의 세 가지 형식이 인식하는 대상이다. (O,  X)










정답   O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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