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나는 문과 학생들에게 고전만 읽으라고 일러 준다. 그러나 그 고전이 너무 많다. 이대로 내려가면 고전에 파묻힐 것이다. 영문학사 강의하다가 내가 읽지 못한 책들을 읽은 듯이 이야기할 때는 무슨 죄를 짓는 것 같다. 그리고 읽어야 될 책을 못 읽어, 늘 빚에 쪼들리는 사람과 같다. 사서삼경이나 읽고 "두시언해"나 들여다보며, 학자님 노릇을 할 수 있었던 시대가 그립다. - 피천득, '너무 많다' 중에서
얼마 전 갑자기 수필을 읽고 싶다는 충동에 피천득 수필집 "인연'과 근원 김용준 수필집을 온라인으로 구매하였다. 피천득 수필집은 학원에서 조례 시간에 아이들 자습할 때 잠깐씩 읽기에 좋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가끔 읽다가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서 좋다. 근원 수필집은 아직 본격적으로 읽지 못했다. 물론 이 두 권을 선택한 이유는 수능 시험 대비를 하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기야 근원의 수필은 최근까지 수능과 모의평가에 자주 등장하고는 했으니 내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늘 새벽 갑자기 잡이 깨어 도통 잠을 다시 청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개 이런 경우 휴대폰으로 쇼츠나 유튜브 등을 보거나 TV를 켜고 OCN 영화나 틀곤 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잠자리 맡에 놓아둔 근원 수필집이 손에 잡혔다. 불을 켜고 수필집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사면 추천사나 소개하는 글까지 꼼꼼히 챙겨보는 것도 습관이 되어 무심코 맨 앞장부터 글을 읽다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그토록 자주 언급하던 작가인데도 인물의 삶에 대해 이토록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근원에 대한 착각은 크게 3가지였다. 우선, 난 근원이 문학가인줄 알았다. 부끄럽지만 말이다. 알고 보니 근원은 동양화 전공의 화가였다. 서울대와 동국대 교수로 지내다가 월북을 한 이유로 한동안 학교에서 그의 글을 접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화가이면서,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였던 것이다. 물론 수필가로도 알려져 있다. 근원(近園)은 그의 아호이다.
다음으로 그의 글은 피천득과는 결이 무척 다르다는 것이었다. 물론 시험에 나온 지문들 일부를 보면서 어슴푸레 느꼈던 사실이지만 직접 책을 사서 천천히 전문들을 읽어보니 확실하게 차이가 느껴졌다. 본인은 스스로를 낮춰보려고 하지만 고풍스러운 글의 분위기는 그가 동양화가였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수필 가운데 아직까지 수능에 출제되지 않았지만 출제될만한 귀한 내용들이 많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비록 지금이야 읽기에 바쁘지만 조만간 수필 몇 편을 골라 수능 문제를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나에게 또 하나의 생활 습관이 만들어진 셈이다. 잠들기 전에 꼭 잠자리 머리맡에서 근원 수필집을 집어 들고 한 편이라도 읽어야겠다는 강박증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전부를 읽어보지도 않고 그의 수필에 대해 설명했던 수많은 수업들에 떠올라 부끄럽기만 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