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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

이런 글을 쓰고 싶다.

by 하늘을 나는 백구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향 같은. 그 커피는 인스턴트처럼 너무 달아도 안 된다. 지나치게 쓰지 않아서 부드럽게 마실 수 있는 커피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향수나 방향제 같은 글이라도 좋다. 요즘 유행하는 은은한 비누향과 같은, 가끔은 머리를 감지 못한 죄책감에 마구 뿌려대는 진한 향의 향수라도 좋을 것 같다.

시트콤 같은 글도 좋겠다.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지만 보다 보면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띨 수 있다면 좋겠다.

보약 같은 글이라면 어떨까? 그도 좋겠다. 먹을 때는 쓰지만 먹고 나면 왠지 힘이 나고 건강해질 것 같은,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많이 힘들 때 찾게 되는 보약 같은 글도 좋겠다.

혹시 스포츠카 같은 글이라면,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배기음을 자랑하면서 팝콘 튀기는 소리를 덧붙여서 앞으로만 질주하는 스포츠카도 좋겠다.

아니다. 초보운전 표시를 큼지막하게 붙여놓고 차선 변경조차 서툴게 하면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운전자라도 좋겠다. 차라리 천천히 갈지언정 사고 위험은 적은 그런 운전자 같은 글을 써도 좋겠다.

봄밤 한강변에 나가 벚꽃을 보면서 끓여 먹는 라면 같은 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도 같다. 거기에 맥주나 소주를 한두 잔 곁들이는 느낌을 그대로 담아보는 글이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처음 홍어회를 먹었을 때 기억이 난다. 입에 넣기는 어렵지만 한 번 맛을 들이고 나면 저절로 묵은 김치에 돼지고기까지 얹고 소주를 한 잔 입에 털어놓고는 그대로 안주 삼아 먹는 홍어회는 어떨까? 첫맛은 독하지만 의외로 그 맛이 오래 남는 홍어회 같은 글도 좋겠다.

마구 비가 내려서 차 안까지 들리는 빗소리 같은 글

버스에 앉아서 졸고 있을 때 옆에서 깔깔거리면서 떠드는 여고생의 목소리 같은 글

그리고 안방 서랍장 위에 올려진 어머니, 아버지, 장인어른의 영정사진 같은 글

그 어떤 글이라도 좋겠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글이라면 그 어떤 글이라도 쓸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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