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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차 인생이라면

바꾸고 싶은 것과 바꾸기 싫은 것

by 하늘을 나는 백구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끔 인생 2회 차와 관련된 내용들이 나온다. 분명 죽거나 죽기 직전에 과거로 돌아가 새롭게 인생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대개 행복한 결말을 맺고 있는데, 드라마를 보다 가끔

나도 만약 2회 차 인생을 산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2회 차 인생이라면 우선 교사 생활을 그만두지 않을 것 같다. 가끔 들르는 학교에서 동료 또는 후배들이 교장, 교감 선생님을 하는 걸 봐서가 아니라, 학원 생활과 학교 생활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봤던 선후배들의 생활이 살짝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내 생활이 무척 부럽다고들 하니 이건 뭐 각자 취향에 맡기기로 하자.

다음은 교사 마지막 해에 내게 거액을 제안했던 모 이사장(가장 큰 기숙학원을 운영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의 의견을 따르고도 싶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훨씬 편안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따지고 보면 당시 거액이라고 생각했던 돈을 학원 나와서 1년도 되지 않아 벌었던 기억이 나서 그것도 좀 별로인 것도 같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운영했던 학원 사업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일로 인해 대략 8년 정도 소송 등으로 고생을 좀 했고, 그 친구는 몇 년 전 수능 모의평가 문제 유출 사고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나도 그 여파로 경찰청 특수 수사과를 여러 차례 방문했던 기억은 정말 지우고 싶기만 하다. 소송으로 들어간 돈도 돈이려니와 정신적 피곤함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가 수능 출제 과정을 경험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어서 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처음 학원에 나와서 대치동 쪽 할머니 두 분과 함께 운영했던 학원 지분을 당시 학부모에게 프리미엄 없이 그대로 주었던 것도 후회가 된다. 지금으로 따지면 작은 집 한 채 정도의 금액은 더 받았을 텐데 그때는 뭐가 그리 자존심이 중요했던지 그런 말을 하지도 못하고

네, 네

하면서 그냥 지분을 넘겨주었었다. 그래도 내가 지금 못 살고 있는 건 아니니 그럼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EBS 강사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날 홈쇼핑에서 내가 만든 책과 음반을 판매한 이유로 한 동안 방송을 쉬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EBS 강의를 밀고 있을 때라 좀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때 함께 했던 선생님들이 다들 어쩌냐고 나에게 물어

제가 다 책임을 지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그게 제일 후회가 된다. 그냥 함께 책임을 나눌 것을 뭐 그리 정의감에 불타서 책임을 지겠다고 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때 책임을 피했던 선생님들이 지금 나보다 잘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니 그것도 뭐 그리 큰 잘못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은 무조건 하고 싶다. 아내가 없었으면 아이들이 없을 것이고, 난 또 다른 삶을 살겠지만 지금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낳고 기른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참으로 건강하고 지혜롭게 자라 주었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2회 차 인생이라고 해도 뭐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긴 내 성격 상 학교에 남아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것도 아닐뿐더러 교장, 교감이 되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것도 잘 못할 것이 분명하고, 다른 사업은 안 하더라도 결국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일들을 많이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 꿈속에서 과거로 돌아간 나를 보았다.

뭐 어떻게 됐냐고?

그냥 지금하고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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