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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Feb 27. 2023

정년 퇴임을 축하드려요. 선배!

기억을 기록하고, 기록을 기억하며

  페이스북에 한 선배의 정년퇴임식 사진이 올라왔다. 예전 모습이 남아 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늙었다. 그분은 내가 초임 교사로 발령받았을 때 짝꿍이었다. 도덕 선생님이었고, 합법화된 전교조 1세대 선생님이었다. 그분과 나이도 같고 전공도 같은 도덕 선생님이 한분 더 계셨는데 역시 전교조 활동을 하셨다. 도덕 선생님들이 유독 참교육 실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되었다.


  발령 받자마자 담임을 맡았던 이유로 좌충우돌의 연속일 수도 있었던 나의 학기초는 선배의 도움으로 별탈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특히 선배로부터 학급 운영과 부서 업무, 다양한 결재처리 등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선배의 가르침은 맘 깊은 존경심으로 이어졌다. 몇 년을 함께 생활하다 보니, 나 또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였다. 몇 년 뒤 내가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고, 이 후 학교를 옮기면서 선배와의 연락이 끊겼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SNS 덕분에 온라인 상에서 서로 과거의 얼굴을 찾아보고 옛 기억을 더듬을 수는 있었다.


  몇 년 전이었다. 선배가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립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되려면 우선 전교조를 탈퇴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가운데 절충안을 찾았으리라 생각했다. 소문을 들은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정년퇴임이라니 세월이 빠른 것같다.


  현재 학원에서 담임과 원장 생활을 함께 하는 나는 과거 선배에게 배웠던 다양한 학급 운영 사례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가령, 아이들 자리에 앉히는 문제만 해도 다들 오는 순서대로든지, 번호표를 뽑는 방식을 활용할 때 선배는 아이가 원하는 자리에 자율적으로 앉되 1주 후에는 앞뒤, 좌우에 다른 친구가 앉아야 한다는 규칙 하나만 지키면 된다는 식의 재미있는 방법을 활용하였다. 매주마다 아이들이 활용하던 일종의 일기장에 손수 글을 써 주는 모습은 큰 덩치와는 다르게 수줍어 보이기까지 했다.


  주변에서 아는 사람이 명예퇴직을 한다느니, 교감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온실같던 학교를 그만두고 정글로 달려온 것 같은 나의 삶에서 볼 때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냥 교사로 남아있었다면 지금쯤 편하게 부장 교사나 더 좋은 보직을 맡아 고정된 급여를 받으며 살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내 성격으로 교실 안에만 있기는 답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면 기억 속의 교사 생활은 기록 속의 것과 사뭇 달랐다. 기억은 기록보다 낭만적이어서 참 다행이다. 선배는 전원 주택에서 화초와 강아지를 키우며 평온한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몇 년 후 나는 지금보다 치열하게도 오늘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게다.
그런 의미로 오늘도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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