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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Mar 14. 2023

말할 수 있는 비밀 3-(4)

오답을 지우지 말고, 정답을 찾아라!

  비문학 독서 지문의 경우 글의 주제를 제대로 찾기만 한다면 의외로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다. 이 말은 출제하는 사람들이 정답을 만들 때 글 전체 주제를 고려한다는 뜻이다. 출제자들이 신경쓰는 부분 중 하나가 문제에 대한 이의 제기나 문항 자체의 오류 가능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방어할 만한 근거를 충분히 갖추어 출제하려고 하며, 이는 곧 글의 주제와 연관된 내용을 정답지로 다루려고 한다는 말과 같게 된다.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은 정답지를 먼저 만들고 오답지를 글의 세부적인 내용에서 골라 만들면 문제 풀이가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 정답을 바로 고르지 못하고 오답을 지우면서 정답에 가까이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쉬운 답을 고르기 보다 어려운 오답을 골라 지워가는 과정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꼴이다.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보자. 


  중국에서 비롯된 유서(類書)는 고금의 서적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항목별로 분류, 정리하여 이용에 편리하도록 편찬한 서적이다. 일반적으로 유서는 기존 서적에서 필요한 부분을 뽑아 배열할 뿐 상호 비교하거나 편찬자의 해석을 가하지 않았다. 유서는 모든 주제를 망라한 일반 유서와 특정 주제를 다룬 전문 유서로 나눌 수 있으며, 편찬 방식은 책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서는 대체로 왕조 초기에 많은 학자를 동원하여 국가 주도로 대규모 유서를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이를 통해 이전까지의 지식을 집성하고 왕조의 위엄을 과시할 수 있었다.

  고려 때 중국 유서를 수용한 이후, 조선에서는 중국 유서를 활용하는 한편, 중국 유서의 편찬 방식에 따라 필요에 맞게 유서를 편찬하였다. 조선의 유서는 대체로 국가보다 개인이 소규모로 편찬하는 경우가 많았고, 목적에 따른 특정 주제의 전문 유서가 집중적으로 편찬되었다. 전문 유서 가운데 편찬자가 미상인 유서가 많은데, 대체로 간행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기존 서적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 기록하여 시문 창작, 과거 시험 등 개인적 목적으로 유서를 활용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윗글은 '유서(類書)'와 관련하여 중국과 조선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은 '지식의 집대성과 왕조의 위엄'을 내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유서를 편찬하였으나, 글의 내용에 대한 별도의 해석을 하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이는 공적인 목적으로 내용을 정리하려는 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조선에서는 중국 유서를 수용했기 때문에 편찬 방식은 중국의 것을 따랐지만 대개 개인적인 목적으로 유서를 활용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유서와 조선의 유서는 다른 모습을 띄게 된 것이다. 


이제 아래 문제를 풀어 보도록 하자. 

 


윗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조선에서 편찬자가 미상인 유서가 많았던 것은 편찬자의 개인적 목적으로 유서를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② 조선에서는 시문 창작, 과거 시험 등에 필요한 내용을 담은 유서가 편찬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③ 조선에서는 중국의 편찬 방식을 따르면서도 대체로 국가보다는 개인에 의해 유서가 편찬되었다.

④ 중국에서는 많은 학자를 동원하여 대규모로 편찬한 유서를 통해 왕조의 위엄을 드러내었다.

⑤ 중국에서는 주로 서적에서 발췌한 내용을 비교하고 해석을 덧붙여 유서를 편찬하였다.


문제를 푸는 방식을 두 가지로 정리해 보자. 우선 오답을 지워가는 방식이 있다. 

① 의 경우 조선에서 개인적 목적의 유서 활용이 많다는 내용은 본문에 있으니 맞는 내용이다. 

② 는 조선에서 편찬자 미상의 유서가 많은 이유를 설명한 부분에 해당하니 맞는 내용이다. 

③ 은 조선의 유서가 중국의 편찬방식은 따랐지만 국가보다는 개인이 주로 담당했다고 언급하니 맞는 내용이다. 

④ 는 중국에서 유서 편찬을 한 이유에 해당하니 맞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⑤ 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경우 유서에 상호 비교나 편찬자의 해석을 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방식이 일반적인 문제집 풀이 방식일 뿐만 아니라 학원 등에서 강사가 설명하는 설명법이다. 


다음은 정답을 찾는 방식이다. 이 글은 중국과 조선의 '유서' 편찬 방식의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 중국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적 사업이기에 개인적 의견 등을 담지 않는다. 반면 조선은 개인 소장을 목적으로 하여 편찬하였다. 그렇다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답을 만들 때는 이 내용을 뒤집었을 것이다. 


중국은 개인 소장을 목적으로 유서를 편찬하였고, 내용의 비교나 해석을 가했다.

조선은 국가적 목적으로 유서를 편찬하였고 국가의 위엄 등을 보여주려고 했다.


자, 이제 정답지를 찾으면 된다. 


  우리는 보통 전자와 같은 방식의 풀이법을 선호하는데 이는 뭐가 명확하게 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 출제의 기본 원리를 알고 나면 후자가 훨씬 쉽고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어질 내용도 예측할 수 있다. 

  조선의 경우 '개인의 목적'이 많았다는 말은 있지만 중국처럼 '내용 비교나 해석'을 가하지 않았다는 말은 없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내용에는 이와 관련된 것을 다룰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참고로 윗글은 2023학년도 수능 지문의 일부다. 그리고 아래는 그 글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 같은 유서 편찬 경향이 지속되는 가운데 17세기부터 실학의 학풍이 하나의 조류를 형성하면서 유서 편찬에 변화가 나타났다. 실학자들의 유서는 현실 개혁의 뜻을 담았고, 편찬 의도를 지식의 제공과 확산에 두었다. 또한 단순 정리를 넘어 지식을 재분류하여 범주화하고 평가를 더하는 등 저술의 성격을 드러냈다. 독서와 견문을 통해 주자학에서 중시되지 않았던 지식을 집적했고,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히는 고증과 이에 대한 의견 등 ‘안설’을덧붙이는경우가많았다. 주자학의 지식을 이어받는 한편, 주자학이 아닌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는 유연성과 개방성을 보였다. 광범위하게 정리한 지식을 식자층이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객관적 사실 탐구를 중시하여 박물학과 자연 과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편찬한 유서가 주자학의 관념적 사유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의 축적과 확산을 촉진한 것은 지식의 역사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어떤가? 조선 후기로 이어지면서 '유서'에 실학자들이 자신의 의도를 담아내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수능 지문 구성법이다. 

오답을 지우지 말고 정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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