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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래

배변 훈련Ⅲ

사회화에 대한 각서

by 하늘을 나는 백구

내 안에는 나만의 언어가 산다.

아직 문법이 되지 못한,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의 목소리.

세상에게 들려준 적 없는

뜨거운 생각의 덩어리.

나는 그 언어의 유일한 주인이자 문지기이며,

스스로 터져 나올 때까지 침묵의 문을 잠근다.

이것은 온전한 나의 세계다.


어느 순간,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나의 언어가 세상이라는 정적 위로 쏟아져 나온다.

백지 위를 번지는 잉크처럼,

내 존재가 소리 없이 퍼져나간다.

보라,

이것이 나의 외침이며

가장 나다운 증명이다.


하지만 세상은 내게 규격화된 언어를 가르치고,

정해진 각도와 박자로만 발을 옮기라 말하고,

모든 감정은 네모난 틀 안에 단정히 개어 넣으라 명령한다.

내 안의 심장은

이제 그들의 손에 감긴 태엽이 되어

예의 바른 소리만 낼 뿐이다.


나는 이제 모나지 않은 조약돌이 되어

세상의 모든 구멍에 그럭저럭 들어맞는다.

날카로웠던 모든 것을 깎아낸 뒤에야 찾아온 평온.

이것은 안도감인가,

공허인가.

모두와 같아져 마침내 안전해지는 이 기묘한 슬픔.


한때 울부짖던

야생의 짐승은 목줄 맨 순한 개가 되고,

나의 꿈은 손톱처럼 잘려나가

무표정한 달력 뒤로 사라진다.

거울 앞에 선 나.

칭찬 속에 서서히 질식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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