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래

어디로?

새벽 산책

by 하늘을 나는 백구

숨을 소주에 섞어 들이키던 한심한 새벽,

철없는 다짐으로 나는 지금 걷고 있어.

저쯤에서 다가오는 가로등 아래

차들의 소음과 첫차를 놓친 여자의 욕설까지,

고스란히 양손에 꽉 쥐고

나는 그냥 계속 걸어.


골목 어귀에 아이들 비명

뒤이은 정적,

한 남자의 구토와 담배 연기

이 모든 걸 발로 걷어차고

나는 한 모퉁이를 돌아.


별 하나 없어

숨소리도 없어

앞이 어두워도 걸을 수 있기에

지금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래, 하나도 안 무서워.


밤새 내린 이슬은 내 신발을 적셔

축축한 공기마저 날카롭게 찔러

폰 화면 속 밝은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

나는 그래도 발을 떼.

어차피 내일 해는 뜰 거고

내 어깨 위 짐들은 그대로일 테니

잠시 멈춰 서서

어두운 그림자들을 밟고 가.


아무도 없는 이 길 끝에

닿을 곳은 없는 것 같아도

넘어지더라도 그냥 웃고 싶어.

나는 그냥 웃을래.


별 하나 없어

숨소리도 없어

앞이 어두워도 걸을 수 있기에

지금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래, 하나도 안 무서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배변훈련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