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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떡

감사함을 물려받기

by 하늘을 나는 백구

아주 오래전 교사가 된 지 2년 차에 첫째 아이를 낳았다. 백일 되던 날 들뜬 마음으로 하얀 떡을 해서 당시 운전 중이던 티코에 싣고 학교로 향했다.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

선생님들께 하나씩 드렸더니 마침 아침을 못 먹었는데 잘 되었다면서 다들 좋아라 하셨다.

교장 선생님 방에 떡을 들고 들어갔다.

"강선생님! 무슨 떡이야?"

"제 아들 100일이 되어서요....."

수줍게 말씀을 드리고 바로 등을 돌려 교장실 문을 열려는 순간,

"잠깐만...... 자, 이거"

하면서 봉투를 주신다. 겉에는 급하게 쓴 글씨가 보인다. '건강하게 자라거라.' 뭐 이 정도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러려고 드린 거 아닙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씀드렸지만 결국 교장선생님께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백일 떡은 그냥 받아먹는 게 아니야. 그게 아이에 대한 예의지."

그 말씀을 듣고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물론 교무실에서도 여러 선생님들께서 봉투를 만들어 주셨다.


오늘 점심 식사 후 학원 교무실을 함께 쓰는 젊은 선생님이 아직 뜨거운 김이 가시지 않은 흰 떡을 한 덩이를 수줍게 건넨다.

"무슨 떡이죠?"

"아이가 백일입니다."

순간 예전에 교장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부랴부랴 1층 데스크로 가서 봉투를 얻어다가 한 글자씩 꾹꾹 눌러서 글을 쓰고는 정성을 담았다.

"최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

복도를 걸어가는 선생님을 불러 세웠다. 선생은 이러려고 한 게 아니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의 손사래도 예전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반복하는 내 이야기에 결국 지고 말았다.

아주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건네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이는 물론 아니다. 그 선생님과 내가 서로 말을 섞어가면서 식사를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왠지 오늘만큼은 그냥 좀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물론 최 선생님이 아니라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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